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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 아냐?… 어라 사진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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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사진, 그중에서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촬영한 것이 이른바 '스트레이트 사진'이다.

그러나 카메라의 눈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은 맨눈에 보이지 않는 극미세의 현장일 수도 있고, 사진을 통해 강조하기 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어떤 이미지일 수도 있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황규태(63) 초대전은 스트레이트 사진의 경이로운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2층 전시장에는 높이 2m가 넘는 대형 컬러 사진들이 벽면을 메우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하고 세련된 색상이 기하학적으로 정연하게 반복되는 작품들이다. TV나 컴퓨터의 모니터를 확대, 접사촬영한 사진들이다.

정연하게 늘어선 빨갛고 노란 광점들은 색면추상이나 미니멀 회화를 연상시키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노란색 원이 끝없이 반복되는 사진도 있는데, 견출지 스티커를 확대촬영한 것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캡슐형 알약을 확대촬영한 거대한 사진이 자리잡고 있다.

미세한 색상의 변화와 긁힌 자국까지 선명한 알약은 낯설고 경이로운 이미지로 관객을 압도한다.

작가는 "사람들은 2층의 작품을 사진이 아니라 회화로 본다. 단지 확대 사진일 뿐인데도"라며 "컬러사진들은 현란하고도 환상적인 색의 하모니,색채의 장난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한다.

3층에 올라가면 1950~60년대의 흑백사진 5백여장이 50여장씩 무더기로 전시돼 있다.

얼핏 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기록사진 같지만 한장씩 뜯어보면 전혀 새로운 이미지가 들어있다.

"사진은 스스로가 이미 독립적인 이미지로서 존재한다"는 작가의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과거의 사진에서 주목받지 못했거나 무의미한 배경에 지나지 않던 작은 부분들을 잘라내 확대해 보여준다. 그 결과 상황은 불확실해지고 이야기는 파편적인 은유가 돼 버린다.

예컨대 연기가 환상적으로 피어오르는 가운데 중절모를 쓴 남자의 뒷모습이 보이는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와 같은 초현실적 분위기다. "원래는 공원에서 낙엽을 태우는 장면 사진이었다"고 한다.

한 손으로 공원 벤치의 윗부분을 쥔 채로 잠든 소년을 담았던 사진도 마찬가지다.

손과 벤치 윗 부분만을 잘라 전시하니까 낯설고 은유적인 장면으로 변해버렸다.

3층의 전시는 옛 사진을 스캔으로 읽어들인 뒤 컴퓨터 포토숍 프로그램으로 트리밍, 확대해서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했다는 점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행복한 만남을 보여준다.

배경음악으로 미국의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가 세계 2천곳에서 채집한 소리를 섞어서 작곡한 '로아라토리오'가 흐르고 있어 사진의 파편적이고 은유적인 성격과 잘 어우러진다.

통산 일곱번째,98년 금호미술관 이래 3년 만의 개인전이다. 2002년 2월 24일까지. 02-733-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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