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는 농부의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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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밭고랑의 무성한 잡초를 매노라면 구슬같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려 눈갓이 쓰려온다. 바람 한점 불어오기는커녕 구름한점 없는 희멀건 하늘이 원망스럽지만 우선 눈앞에 보이는 김매기에 쫓겨 딴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이렇게 한낮쯤 되면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옷이 몸에 친친 감긴다. 흙냄새와 땀냄새 속에서 자라온 내코에도 내몸에서 나는 땀내가 진하다.
○…검게탄 얼굴에 치렁한 댕기머리가 머슴 손같이 거친 내손등에 걸치면 나는 서울간 「경애」의 편지를 생각한다. 얼굴이 탄다고 햇볕은 원수처럼 싫어하는 심정, 문밖만 나가려도 「파라솔」이며 진한 화장을 꼭한다는 서울아가씨들의 살결고운 얼굴을 그려보다가 그만 호밋자루를 꼭 쥐곤 한다. 평생을 흙속에서 시뿌리어 매가꾸기에 허리가 굽으신 아버지의 말씀이 귀에 잡히는 것 같아서.
○…『아무리 곡식값이 헐해서 적자농사라지만 한포기라도 더 심어서 한톨의 곡식이라도 더내야 한다. 그래야 굶는 사람이 없게 되고 굶주린 사람이 없어야 잘살게 되는 것이다.』 난 아버지의 말뜻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주렁주렁 연 고추며 가지가 귀엽고 탐스러워 바삐 호미를 놀린다. <문효순·20세·전남 나주군 남평면 광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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