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가던 저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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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제는 너도 늙은 총각이 다됐구나 쯧쯧…나이 서른이면 반평생인데… 나도 손자 둘쯤은 버린 셈이지…』 저녁 식사가 끝나자 극장엘 가려고 아침 출근 때 입었던 나들이옷을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시던 어머님이 혼자서 하시는 말씀이다. 작년 까지만 해도 극장에 가려면 으레 입었던 작업복마저 신사복으로 갈아입고는 손질을 한다, 머리에 빗질을 한다, 수선을 다 피웠었으니 어머님의 이런 말씀도 당연한 말인지 모른다.
『서른이면 아직 먼 셈이에요. 서른 다섯 난 총각도 수두룩한데…』나는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옛날은 스무 살만 돼도 늙었다고 신부 감을 구하기가 퍽 힘들었단다. 글쎄, 서른이 됐는데 늙은 총각이 아니고 어린 총각이란 말이냐?』
결혼얘기만 나오면 거절해 버리는 나를 두고 어머니는 성화 시다. 『그건 시대가 틀리잖아요. 요즘은 서른 된 총각쯤 보통이에요. 그리고 약을 쓴다, 수술을 한다, 하면서까지 산아를 제한하려는 뗀데 결혼연령을 늦추면 힘 안들이고 산아제한도 할 수 있어 현대적(?) 이 아니겠어요?』
나는 이렇게 「유머」삼아 늙은 총각의 타당성을 말했지만 극장을 향해 어스름 길로 들어섰을 때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들려오는 듯 했다. 『사내 나이 서른이면 반평생인데….』 점점 늘어가기만 하는 늙으신 어머님의 말씀이 옳은 말씀일까? 【김경호·제주도 남군 중문면 하원리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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