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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얼어붙는 민간소비, 경기 부양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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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엔화 약세로 수출이 비틀거리고 경제민주화 열풍에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우리 경제의 쌍발엔진인 수출과 설비투자가 위축되면 민간소비와 재정 확대가 마지막 희망이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복지는 늘리되 공공투자는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재정 확대에 기대를 걸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마저 빠르게 얼어붙는 조짐은 우리 경제의 전방위적 위축을 의미한다. 장기 저성장 늪으로 빠져드는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연초 백화점들의 세일 기간 매출은 전년대비 8~10%씩 뒷걸음질했다. 의류 등 생필품은 물론 경기를 안 탄다는 유아용품까지 ‘떨이’처분에 나섰다. 백화점과 유통업계는 소비 빙하기를 맞아 신규 출점은 엄두조차 못 낼 형편이다. 젊은 여성들이 속옷마저 중고사이트에서 구입하면서 중고시장만 기형적인 호황을 누릴 정도다. 이제 소비가 위축을 넘어 실종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다. 20년 만에 최악의 매출 감소에 시달리는 대형마트들은 설 대목을 포기한 채 가격파괴와 ‘땡처리’로 비상구 찾기에 혈안이다.

 당국은 올해 민간소비가 2% 후반쯤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지만, 착시현상에 빠져선 안 된다. 설사 이 예측대로 움직인다 해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2.6%)이나 카드사태가 발생한 2003년(2.8%)과 엇비슷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소비둔화가 심상찮다. 실질임금이 오르고 물가가 안정되는데도 민간소비가 옆걸음 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 밑에는 가계부채와 주택시장 부진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 비중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이른바 ‘역(逆)자산 효과’가 민간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은퇴에 따른 소득감소와 노후 불안감으로 노장년 세대들이 빠르게 소비를 줄이고 있다.

 소비는 심리다. 늪에 빠진 민간소비를 끌어내려면 그만큼 세심한 접근이 절실하다. 우선 2월 국회가 열리는 대로 주택 취득·등록세 감면 연장안부터 통과시키고,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등 부동산 규제를 푸는 일이 시급하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한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하를 망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소비위축에 제동을 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정부도 필요하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정책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일본은 소비진작의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뒤늦게 정부가 상품권까지 뿌렸지만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우리도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 미리 소비심리를 살려놓지 않으면 소비 실종→기업의 매출 부진→설비투자 감소→장기 저성장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금은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