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교수들까지 제자 취업 발벗고 나서

중앙일보

입력

고려대 경영대 李모 교수는 최근 한달 동안 눈코 뜰새 없는 일정을 보냈다.

"일 좀 하게 해달라"며 찾아온 비(非)경영학 전공 공인회계사(CPA) 합격생 7명의 취직 알선을 위해서다. 회계법인에서 활동 중인 제자들을 수소문해 "제발 한명씩만 책임져 달라"며 사정하고 더러 술도 사면서 간신히 모두 취직시킬 수 있었다.

제자들을 위한 교수들의 취업 알선 전쟁이 이제 명문대라고 예외가 아니다. 유례 없는 대졸자 취업난에 '명문대 간판'이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비교적 취직이 잘 되던 공대나 경영학과의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崔모 교수는 취업철을 맞아 자신이 직접 만든 학생들의 '적성카드'를 들고 학생들과 함께 회사를 찾아 다닌다.2학기 들어 제자들의 적성과 실력.장점 등을 세밀히 적어둔 그만의 기록이다.

崔교수는 "1~2년 전만 해도 영어실력이 출중하다는 점만 강조하면 졸업자들의 취직이 수월했지만 요즘은 교수추천서만으론 어려워져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공대 申모 교수는 올들어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거나 기업강연회 등에 참석할 때마다 "우리 졸업생들을 좀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이렇게 일년 동안 공을 들여왔지만 부탁한 15명 중 아직 8~9명만 성사됐다"고 그는 안타까워 한다.

그래서 申교수는 요즘 학생들이 취업용으로 쓴 자기소개서를 빠짐 없이 일일이 검토하고,실전 같은 면접연습도 이따금씩 시키고 있다.

이번 졸업 예정자 40여명의 취직자리를 알선해준 서강대 경영대 全모 교수는 "앞으로 한동안 교수들에게 매년 2학기 취업알선 경쟁은 더 극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직전문업체 잡코리아 관계자는 "올 하반기 취직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명문대 졸업자들의 취업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벤처 열풍이 꺼지고 대기업이 경력사원 위주로 채용하자 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홍주연.남궁욱 기자 jdre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