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의 마켓워치] ‘엔저’에 저격당한 한국 증시 통화정책 때 놓친 건 아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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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광기
국제경제팀장

경제의 변화 흐름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곳이 증권시장이다. 1월의 글로벌 증시를 보면 실물경제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흠뻑 배어 있다. 미국 다우지수와 일본 닛케이지수가 각각 7.1% 뛰었고, 영국 FTSE지수와 중국 상하이지수도 6.4%와 5.1% 상승했다. 동남아 등 신흥국들의 주가도 2~5% 정도씩 올랐다.

 글로벌 증시가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 상승 트렌드로 접어들었다는 성급한 진단도 나온다. 이른바 ‘자금 대전환(great rotation)’ 내지 ‘나름 이성적 과열(semi-rational exuberance)’ 등 해석이다.

 그런데 유독 ‘왕따’를 당해 따로 노는 시장이 있으니, 바로 한국이다. 코스피지수는 1월 중 1.8% 떨어져 세계 최하위권 수익률을 기록했다. MSCI 글로벌지수와 비교해 수익률 갭이 8%나 됐다. 최근 몇 년 새 이처럼 심한 ‘디커플링’은 없었다. 한국은 세계 경제가 좋아질라치면 가장 앞서 치고 올라가는 시장이었다. ‘엔저’의 습격 등 여러 이유가 제시되지만, 한국 스스로 대응을 잘못해 따돌림을 자초한 측면도 강하다.

 증시 전문가들은 지난달 11일이 중대 분기점이었다고 설명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2.75%로 동결한 날이다. 그럭저럭 글로벌 증시를 따라가던 한국 증시는 이날부터 완전히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세계 각국이 참호를 파고 환율전쟁을 벌이는데, 한국만 대응 사격을 안하고 여유를 부리다 저격을 당한 꼴”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도 “한국은행의 관망자세를 이해할 수 없다. 곧 출범할 새 정부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현재 1.5%선으로 미국(1.7%)보다도 안정돼 있다.

 금융시장에 ‘승마론’이란 게 있다. 말이 뛰면 기수도 일단 호흡을 맞춰 뛰어준 뒤 서서히 말을 안정시켜야 낙마를 피할 수 있는 것처럼, 통화정책도 그렇게 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 좀 하라고 임직원을 다그치고 글로벌 트렌드을 놓치지 않겠다며 해외 출장에 열심인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승마론을 몰랐는지 궁금하다.

 박근혜 당선인의 행보에 대해서도 시장은 점차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신정부들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고 있는데, 한국은 복지 담론에 빠져 미래의 성장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월에는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 증시들과 ‘커플링’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증시가 1월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한국은 그저 계속 쉬다 보니 흐름이 같아질 것이란 얘기다.

김광기 국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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