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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한다는 약정서까지 쓰고 2차대전후 일군이|불태운 지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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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덥고 지리한 「싱가포르」시 「주룡」기지-. 남루한 노동복 차림을 한 근 2천명의 한국인들은 활활 불타오르는 지폐더미를 넋을 잃고 지켜보고 있었다. 1945년 12월3일 하오의 일. 5시간이나 계속된 지폐소각 뒤 일본군 장교 한 사람은 미농지위에 이렇게 휘갈겨 썼다. 『군표(군표)의 완전소각을 확인함. 제7방면군군정총감부 육군대위 「오까모도」(강본순일)』라고. 이렇게 불탄 「싱가포르」의 한국인소지화폐는 당시의 일본군 군표로 1천1백여만불(현화로는 계산 불가능). 이듬해 배편으로 고국에 돌아온 이들 한국인들은 20년 동안 일본 정부당국에 그 보상을 요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에 그 해결을 바라고 있다.
2차대전이 끝난 해 동남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교포들은 삼삼오오 대열을 지어 「싱가포르」시 「갱힐로」에 모여들었다.
일본군의 행패를 공동으로 방위함과 아울러 독립국민임을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모여든 인사들은 자유로 이민 갔던 사람, 징용 당한 사람, 강제로 군대에 끌려간 사람 등등….
이곳에 모인 이들은 「고려인회」를 조직했다.
그 회원은 무려 1천9백37명-.
회장에는 정원국씨, 부회장에 박정찰씨, 그리고 총무에는 이재호씨, 그밑에 6개 부와 32과를 두고 이 단체를 운영하였다.
이들은 일본군의 항복즉시 우리 태극기를 게양했다. 그러나 아직 독립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합군에 의하여 태극기게양이 금지되자 이에 분개한 교포들은 연합국기의 게양을 거부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식량배급을 비롯하여 각종 배급이 거부되어 우리 교포들은 사선을 헤매면서 포로 아닌 포로생활을 견디게 되었었다. 이렇게 설움을 받아오는 동안 돌연 교포들이 가지고 있던 화폐가 몰수당했다. 연합군의 허가를 받아 일본군이 우리 교포의 화폐를 몽땅 소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교포들은 일군에게서 봉급으로 받은 돈, 또는 자기사업에서 번 돈 등이었는데 그것이 일본군이 발행한 군표였다.
이 군표의 종류는 「달러」「루피아」·「길다」 등등의 명칭이 붙은 것이었는데 이 돈은 당시 연합군의 군표와 맞바꾸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 교포들이 빼앗긴 돈의 액수가 1천여만「달러」-. 1945년 12월3일, 46년 2월4일, 등 3월17일…. 이렇게 3번에 걸쳐 소각했는데 일본군은 그대로 소각해 버린 것이 아니라 소각했다는 증명서를 내주었다. 그러면서 그 증명서만 가지면 일본에서 후일에 그와 동액의 보상을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한다.
여기에 서명해서 증명한 자는 7방면사령관 「이다가끼」대장을 비롯하여 7방면사령관대리 「기노시다」, 일본군 주계대위 「히비야」 등이다.
불태운 현금 이외에도 이들 가운데는 그 고장에 큰 사업소를 가졌었는데 이 사업소에 대해서는 「휴전에 의한 상실재산 증명서」란 증명을 받았다.
이 증명에 의한 교포들의 공장 시설 등 20여개 사업소의 손해 액은 무려 28억여만원(당시의 일화)외에도 현재 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기예금, 수표, 내지 불예금청취증이 있는데 그 액수는 10만9천불(일군표액)과 2만3천원(당시의 일화).
그러나 이 숫자는 증서가 남아있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총액은 상상외로 거액일 것이란 것이다.
이러한 증서를 안고 20년 동안 고려인회 간부들은 일본정부당국과 서신으로 혹은 인편으로 접촉, 이의 보상을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사실은 인정하되 한·일 관계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구실로 거절되곤 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그들 본국에 돌아가는 즉시 현금과 바꾸어 주었으며 같은 동남아「라바울」에서 돌아오다 일본에 기항했던 교포들은 그 당시 보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각종 증명에 의해 계정 되고 있는 보상받을 액수에 대해 이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현재 동남아 지역해협 불과 미본토불은 3대1의 비율이기 때문에 그 비율에 의한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각된 화폐는 한화로 약 10억원인데 그의 시설 손해액이 당시의 일화로 28억원이니 현재 얼마나 받아야 할는지?
이들은 숨겨져 있던 태평양전쟁의 집단피해자들로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는지? 받게되면 얼마나 어떠한 방법으로 받을 것인지 색다른 화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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