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청문회 가면 죄인 취급하니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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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인수위원장직은 유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용준 인수위원장. 전날 총리 후보직을 사퇴한 김 위원장은 인수위원장직은 계속 유지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인수위원들에게 “당선인에게 누가 된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다. [인수위사진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30일 새누리당 강원지역 의원 8명과 점심을 같이했다. 점심은 삼청동 안가(대통령·당선인이 쓸 수 있도록 한 안전가옥)에서 이뤄졌고 점심상엔 떡갈비·생선찜이 곁들여진 한정식이 올라왔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전날 총리 후보를 전격 사퇴한 뒤였지만 박 당선인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오찬 발언 곳곳에선 김 위원장의 중도 사퇴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의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박 당선인은 "청문회에 가면 마치 죄가 있는 사람처럼 대한다”며 “후보자나 후보자 가족, 주변 사람들이 공개되고 공개된 청문회장에서 후보자가 사적인 부분까지 공격을 당하는 이유 때문에 좋은 인재들이 (공직을) 두려워하는 부분은 굉장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그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박 당선인은 김 위원장의 낙마가 ‘밀봉인사’ 때문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공개 검증이 어렵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한 의원은 “박 당선인은 후보로 A, B, C, D 4명을 공개하면 4명 다 상처를 입혀서 바보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의원이 “정책검증은 공개적으로 하되 사생활 부분은 지켜줘야 하지 않느냐. 미국은 (인격 부분이) 잘 지켜져 인사청문회가 더 효과적이지 않으냐”고 하자 박 당선인은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또 한 참석자가 “예수님도 우리나라 국회 청문회는 통과하지 못한다”고 농담했을 때는 웃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오후 1시45분쯤 점심식사를 마친 박 당선인은 곧바로 인수위로 이동해 정무분과 국정과제 토론회를 주재했다. 이곳에는 김 위원장이 먼저 나와있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 앞서 “위원장직은 계속 유지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 예, 예”라고 답했다.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은 “(김 위원장이) 끝까지 마무리를 잘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회의는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했다.

 ◆“한 방울 오물 섞여도 못 마셔”=박 당선인은 토론회에서 ‘낙하산 인사’의 근절을 강조했다. 또 “1리터의 깨끗한 물에 한 방울이라도 오물이 섞이면 마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99%의 공무원이 깨끗해도 1%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국민들은 공직사회 전반을 불신하게 된다”고도 했다. 공무원의 면책제도와 관련해선 “접시를 닦다가 깨뜨리는 것은 용납될 수 있지만 깨뜨릴까봐 두려워 아예 닦지도 않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적극적인 업무수행을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또 “감사원이 세출 구조조정 감사를 통해서 불요불급한 사업과 통폐합이 필요한 유사·중복 사업을 찾아낼 계획이라고 그러는데 이것이 차질 없이 되도록 협의해 달라”고도 주문했다. 그간 세출 구조조정은 기획재정부에서 주로 맡아왔다. 하지만 최근 재정부가 인수위의 세출 구조조정 계획에 적극 협조하지 않자 박 당선인이 재정부가 아닌 감사원에 이 일을 맡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허진·정원엽·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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