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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철권통치 하수인들 여전히 ‘떵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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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9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 엘시시 국방장관은 “정부와 야당의 견해 차가 국가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그는 최근 새 단장한 이집트 카이로 호텔에 있는 회원 전용 헬스 클럽에서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후에는 상류층이 주로 찾는 게지라 스포츠 클럽에 들러 테니스를 치며 이집트 엘리트층 인사들과 교류한다. 저녁이 되면 동료들 소유의 고급 빌라를 찾아 간단히 파티를 벌인다. 이따금씩 빈민촌을 찾아 배고픔에 허덕이는 시민들과 이야기도 나눈다. 옛 정권이 차라리 나았다는 말을 들으며, 역시 자신은 잘못한 일이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한다.

 이는 현 이집트 고위층이나 부호의 일상이 아니다. 바로 2년 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국민적 규탄의 대상이 됐던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의 핵심 인사, 자히 하와스 이야기다. 이는 시민들의 피로 민주 혁명에 성공하고서도 과거사 청산에 실패한 이집트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30일(현지시간) “많은 이가 2년 전 무바라크를 비롯한 정권 요인들이 처벌받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들은 지금 전과 다를 것 없는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며 “이제 이들은 자신들이 무지한 대중이 만들어낸 희생양이라며 무고함을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하와스는 무바라크 정권에서 고대유물부 장관을 지냈다. 서방 국가가 약탈한 이집트 유물 반환에 주요한 역할을 하며 이집트학의 세계적 스타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시민혁명 후 유적 관련 계약 과정에서 최소 수십만 달러의 부당 이득을 얻은 사실이 드러나 법정에 섰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상급 법원은 지난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WP는 거물급 독재 정권 인사 가운데 현재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무바라크와 두 아들을 포함해 15명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전 문화부 장관 파루크 호스니 역시 300만 달러 부정 축재 혐의로 기소됐지만, 올 초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시민혁명 과정에서 유혈 진압으로 시민 900명이 숨졌고 이와 관련해 경찰관 170명이 기소됐지만, 실제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2명뿐이다.

 WP는 혁명 뒤 과도정부와 현 사법부에 친무바라크파가 다수 잔존한 것이 과거사 청산 실패의 주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파라오 헌법’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를 통해 혁명파와 무바라크파가 힘을 합치며, 옛 독재 정권 인사들에 대한 시민들의 적대감도 줄어들었다는 것이 WP 분석이다. 친무바라크파로 낙인 찍혀 지난해 대선에서 낙마한 아무르 무사 전 아랍연맹 사무총장 의 정치 복귀도 점쳐진다.

 한편 이집트 검찰은 29일(현지시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검은 복면 시위대 전원에 대해 체포령을 내렸다. 무르시 대통령이 수에즈·포트사이드 등에 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야권의 대표 인사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폭력사태 종식을 위해 무르시에게 긴급 회동을 제안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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