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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 고수들 역발상 악재 겹친 현대차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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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왼쪽부터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부사장 최웅필 KB자산운용 이사,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전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엘리베이터 안. 증권사 배지를 단 두 남성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최웅필 매니저가 현대차를 사고 있답니다.” “그래? 환율이 (주가에) 어지간히 반영됐다고 봤나 보네?”

 한국 대표 수출기업들이 비관론에 휩싸여 있다. 경기 둔화와 엔저라는 겹악재를 만나 실적이 둔화하고 주가도 빠진다. 국내 생산량의 60%를 수출하며 일본 도요타와 경쟁하는 현대차 주가는 올 들어 6.8%, 지난해 9월 대비 20% 하락했다. 반대로 도요타 주가는 50% 급등했다. 조선·철강·화학 등 다른 수출기업도 비슷하다. 현대중공업과 LG화학의 주가는 올 들어 각각 10%, 5% 내렸다. 삼성전자도 실적 감소 공포에 7% 내렸다. 주식시장에는 최근 몇 년간 한국 경제와 증시를 주도해온 대표 기업의 성장동력이 꺾였다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위기를 기회라며 반기는 이들이 있다. 가치투자 고수들이다. 국내 3대 가치주펀드인 ‘신영 마라톤’(10년 수익률 300%), ‘한국밸류 10년투자’(지난해 운용사 수익률 1위), ‘KB밸류포커스’(최근 2년 펀드 수익률 1위)가 지난 연말부터 최근까지 현대차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도 이들의 쇼핑 목록에 포함됐다. 이전에는 가치투자자가 선호하지 않던 기업들이다.

 가치투자는 기업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전략이다. 가치투자자는 ‘싼 주식’을 찾지만 ‘싸구려 주식’은 안 산다. 주가가 하락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즉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 같은 기업’을 고른다. 그들이 대표 수출기업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이런 기업의 내일을 낙관하기 때문이다.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부사장은 “현대차는 이제 가파르게 성장하는 대신 내실을 다지는 기업이 돼 안정적인 이익을 낼 것”이라며 “환율이 현대차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훼손하지는 않았다”고 ‘쇼핑’의 이유를 밝혔다. 최웅필 KB자산운용 이사는 “달러당 90엔 선인 엔화가치가 조금 더 떨어질 수도 있다”며 “그래도 현대차는 세계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고, 브랜드 파워도 있어서 환율이 큰 악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도 깔려 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전무는 “최근 4년간 경기가 나빠 그와 연관된 대표 기업 주가가 지금 다 엉망”이라며 “가치주펀드가 요즘 대형주, 수출주를 담는 것은 경기 회복을 기대하며 미리 사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원화 강세에 따른 실적 우려로 주가가 내리는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이들은 다르게 본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는 “삼성전자는 환율 문제는 거의 초월한, 급이 다른 기업”이라며 “글로벌 소비자가 엔저로 값이 싸졌다고 소니 제품이나 노키아 제품을 사지는 않는다”고 했다. 환율보다는 스마트폰 시장의 변화에 삼성전자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견해다.

 다만 모든 수출기업이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상황은 아니다. 이들은 화학 등의 수출 기업은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최 대표는 “산업소재는 자동차와 달리 철저히 수요와 공급에 좌우되는 시장”이라며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거나 브랜드 가치가 없는 기업에는 여전히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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