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 풍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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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개가 사람을 물었을 경우, 누가 책임을 지는가? 두말할 것없이 주인이 그 치료비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해답은 간단하지만 왜 개가 한 짓을 선의의 제3자가 책임을 져야하는가? 하는 그 해석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주인은 개를 보호하고 간수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의 소행에 대해서 주인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 정신적인 것, 그리고 원리적인 것을 중시하는 것, 이런 법해석이 바로 대륙법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주인은 어떤 이익을 위해서 개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도둑을 지킨다거나 사냥을 한다거나…. 그러기 때문에 개가 사람을 물었을 경우, 주인은 자기 이익수행을 목적으로 하다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이므로, 마땅히 판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책임이지만, 이것은 도의적인 원리문제보다 이익관계를 더 중시한 발상법이다. 그런 안목으로 법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영미법」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해석을 내리든 개가 사람을 물었을 경우, 주인은 뒷짐을 지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내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시킨 것이 없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변명을 할 순 없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엔 대륙법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 도의적인 것이나 원리적인 문제가 항상 행위의 결과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사고방식이 강하다.
「테러」범 조작에 있어서, 엄 내무가 물러서야 하느냐 마느냐가 요즈음의 화제인 것같다.
한 장관이 그 자리를 뜨느냐 마느냐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귀엽고 밉고가 문제가 아니다. 다른 장관을 앉혔다해서, 그런 일들이 근절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아닌말로 더 나쁜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왕지사-엄 내무는 진짜 「테러」범을 잡아내는 것으로나마 그 책임을 밝혀주어야 할 것같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이땅의 정치에 책임의식이 희박해져 가고 있다는 슬픔이다. 이젠 이웃집애에게 자기 자식이 맞아죽어도 항의할데가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내가 시킨 짓이 아니니 모른다고 할 것이다. 사회풍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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