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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각드러난 권력싸움|중공의 문화계숙청 그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작년 11월에 시작된 문화계숙청은 곽말약의 자기비판, 북평인민일보 편집장 등척과 당정치국원 팽진(북평시당제1서기)과 중공군총참모장 나서경의 해임 등으로 발전, 「이데올로기」 투쟁으로부터 명백한 권력투쟁으로 표면화하고 있다. 중공 당이론기관지 「홍기」지 10일치 8호는 『반동적인 잔재들이 큰 세력을 갖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쿠데타」를 기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홍기지의 반혁명 「쿠데타」 경고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대북의 징생신문은 임표 국방상(당부주석·국가부주석)이 주은래 등소평 등과 결속, 국가주석 유소기에게 반격여유를 주지않기 위해 북평·천진에 4개사단 정예병력을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유까지 반혁명의 비판대상에 올라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하더라도 한때 모택동의 후계자 물망에까지 올랐던 팽진의 실각은 모의 사기임박이란 상정하에 후계문제를 에워싸고 유의 지위마저 위태로울 수 있는 심각한 권력투쟁이 노골화한 것을 시사하는 것만은 명백하다.
일체의 권력을 집중하고 있는 당정치국의 「폭풍」이 모 체제의 기반을 당장 위협할 것은 아닐지라도 작년 가을에 시작된 문예정풍이 권력투쟁으로 변질되고 앞으로 6개월간 대학과 고등학교를 휴교까지시켜 육체노동에 종사케하면서까지 교육계에서도 철저한 정풍을 강행하려하는 사실은 반혁명·수정주의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말하고 있다. 정풍운동을 주도하는 해방군보와 북평 인민일보·홍기지 등이 한결같이 『이번 투쟁은 반동세력의 부활에 대한 사활적 투쟁이며 당과 국가, 세계혁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심각해하며, 더우기 홍기지가 「헝가리」식 반혁명 「쿠데타」의 가능성까지 경고한 사실은 뿌리깊은 반당·반혁명 세력의 저항으로 현체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을 정도로 사태의 심각함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권력투쟁은 「이데올로기」의 싸움이기보다는 인간의 권력의 싸움이기 때문에, 모 노선의 충실한 추진자로서 60년 11월 「모스크바」 81개 당회의, 63년 7월의 중·소당회의에 중공대표로 참석, 수정주의와 싸운 팽진이 수정주의 말살의 정풍운동의 결정에서 권력의 경쟁자에 의해 실각당했을지라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소련 수정주의 비판의 맹장답지 않게 오함(북평부시장), 등척(북평인민일보 편집장) 등 「현대수정주의 인텔리」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 팽진의 권력투쟁에서의 결정적 패인이었다.
팽진 실각으로 당내 지위가 한층 강화된 것같이 보이는 임표 국방상, 등소평 총서기 등 「다음 세대를 짊어질」 지도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은 정풍운동의 바람을 타고 무대의 정면에 등장하고 있다. 무릇 모든 권력투쟁이 그러하듯이 차대의 지도자가 권력을 쥐는 과정은 기성권력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행동하며 반대파를 봉쇄하는 것이 상도이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 누구보다도 충실한 「스탈린」주의자였던 「흐루시초프」가 비 「스탈린」화의 불을 뿜고 수정주의자의 길을 달리다가 수정주의의 오명을 쓰고 무대에서 퇴장하자 그 뒤를 이은 「브레즈네프」와 「코시긴」은 「흐」 이상으로 수정주의에 박차를 가했다는 전체주의 체제하의 정권교대 생리를 음미한다면 모의 충실한 후계자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았을 때 국내외 사정의 변화에 적응, 비 모택동 화를 외치지 않을 보장은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 사후의 소련에서와 같은 정책수정이 멀지않아 중공에도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결코 부자연한 것은 아니다. 현재의 권력투쟁이 상징하듯이 북평정권의 단결에도 흠이 생긴 것은 부정못할 일이며 따라서 모 사후의 권력분산은 필연화 할 것이며 모체제를 침식한 「반혁명수정주의」압력의 반작용으로서의 정풍운동이 권력투쟁으로 변화한 현상은 모 체제 붕괴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고 하면 과언일 것인가. <이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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