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는 마음만이 어둠을 이길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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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에서 19세기는 어둠을 발견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명한 것은 1879년의 일이다. 대낮처럼 어둠을 밝히는 백열전등의 등장은 이전까지 살갑게 다가오던 어둠을 인간의 밤 생활에서 분리시켰다.

일상생활에서 어둠이 분리되는 것처럼 인간의 사고체계에서 환타지 역시 떨어져나갔다. 그런 점에서 무의식을 다룬 프로이트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말하자면 프로이트의 학설이란 무의식이라는 어둠을 밝히는 백열전등이나 마찬가지다.

19세기에 비로소 발견된 인간의 그늘
보들레르가 에드가 알란 포나 E.T.A. 호프만에 빠져든 것은 19세기 인간들에게 새로 발견된 어둠이 얼마나 매혹적이었는가를 반증하는 일이다. 보들레르는 프로이트가 설명하기 전에 이미 인간의 그늘진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에드가 알란 포의 『검은 고양이』나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이 다루는 게 바로 그 부분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들 작품이 이제는 어린이용 책으로 묶인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이는 19세기 인간들의 공포가 21세기에 와서는 어린이들이 느끼는 공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셈이다.

우리가 포나 호프만 등을 비롯한 19세기 작가들의 작품을 오해하게 된 것은 그들의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출간된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최민숙 옮김, 비룡소) 완역본은 이 오해를 교정시켜준다는 점에서 출판사적 의의가 있다.

1776년 옛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출생한 호프만은 삶의 대부분을 법관으로 복무했다. 그런 그에게 ‘밤의 호프만’, ‘유령 호프만’이라는 별명이 붙은 까닭은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지점이 그랬기도 하지만, 낮과 밤의 생활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호프만은 낮에는 빈틈없는 법관으로 일하고, 밤이나 주말에는 글을 쓰고 작곡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중생활을 계속했다. 이런 이중생활이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그는 무의식의 세계를 처음으로 탐색한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우리가 아는 『호두까기 인형』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주인공 마리가 선물받은 호두까기 인형이 장난감 병정들의 대장이 되어 생쥐 떼와 싸우고 마리를 인형의 나라로 데려간다는 내용이다.

이번에 출간된 완역본은 그간 소개된 책에 빠져있던 〈단단한 호두에 대한 동화〉가 삽입됐고 호두까기 인형이 왜 그렇게 못 생겨졌는지, 생쥐 왕이 왜 호두까기 인형을 공격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이 마리가 꾸는 꿈 속의 일이라는 사실도 강조된다.

여러 모로 영화 ‘토이스토리’의 고전판이랄 수 있지만 모든 내용이 마리의 환상이라는 점이 ‘토이스토리’와는 다르다. 마리가 본 것들을 얘기하자, 의사인 아버지는 “도대체 저 애 머리 속 어디에서 저런 온갖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는 걸까?”라고 말하고 어머니는 “저 애는 상상력이 풍부하잖아요. 사실 그런 꿈을 꾼 것은 단지 급성 창상열 때문이었겠지만요”라고 말한다.

이는 19세기 이후 예술이 떠맡게 된 또 다른 영역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정신병이 인간성의 그늘로 고립되면서 정신병이 만드는 환상은 병원의 담벼락을 넘을 수 없게 됐다. 이에 유일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예술이다. 이는 쉬르레알리즘은 왜 예술이고 정신분석의의 분석 자료는 왜 병의 징후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지만, 『호두까기 인형』은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다. 호프만의 분신이랄 수 있는 이야기 속 드로셀마이어 대부(마리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한 사람이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아이들에게 이 환상이 얼마나 영속적인지 보여준다.

‘토이스토리’의 고전판에 해당
“아, 귀염둥이 마리야, 너는 나나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단다. 너는 피를리파트 공주처럼 타고난 공주란다. 왜냐 하면 아름답고 찬란한 왕국을 다스리고 있으니까.

그러나 네가 기형이 된 그 불쌍한 호두까기 인형 편을 들면, 여러 곳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추격하고 있는 생쥐 왕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게 될 거다. 그러나 내가 아니라, 너, 오직 너 혼자만이 호두까기 인형을 구할 수 있단다. 네 뜻이 변치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으렴.”

이 이야기에서 드로셀마이어의 존재는 참 특이하다. 마리에게 환상을 심어준 사람이면서 마리의 환상을 허튼 소리로 일축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모순된 역할을 옮긴이 최민숙 교수(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는 이렇게 설명한다.

“시의 세계는 아무에게나 드러내거나 내주어서는 안되며, 우리들 각자의 고귀한 내면의 세계로 남아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로베르토 이노센티의 삽화는 마리가 보는 환상과 공포와 즐거움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김연수/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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