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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예술가 거미를 아십니까?

중앙일보

입력

거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징그럽고 불쾌한 생물로 여겨지지만, 이 어디서나 천대받는 거미를 아름답게 그린 이야기가 한 두개 정도는 있습니다.

유명한 『샬롯의 거미줄』이나 지금 말하려고 하는 『소피의 달빛 담요』(파란자전거)가 그렇지요. 이 얘기들이 모두 어린이책이라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라요.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는 없으며, 전부 소중하다는 생각이 가장 뚜렷한 것이 어린이 문학이니까요.

『소피의 달빛 담요』의 주인공인 소피는 예술가 거미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세상에서 거미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지 못하는 아기였지요. 꿈에 부푼 소피는 사람들을 위해 밋밋한 현관에는 햇살을 섞은 아름다운 커튼을 만들어 주었고, 회색의 옷 대신에 하늘을 닮은 푸른색 옷을 선물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 마음을 알아 주지 않았어요.

주인 아주머니는 빗자루를 마구 휘둘렀고, 선장 아저씨는 무서워서 창문 밖까지 도망쳤으며, 요리사는 흉측하다며 욕까지 합니다. 모든 거미들이 감탄하고 칭찬하던 아름다운 소피의 거미줄도 하숙집 사람들에겐 하잘 것 없는 쓰레기였던 거지요.

누군가에게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주고 싶어했지만,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을 때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더구나 그 거미줄은 어둡고 칙칙한 사람들의 마음과 집을 밝게 해 줄 수도 있는 아름다운 예술품이었는데 말이에요.

소피의 이런 운명은 세상에 빛을 가져다 주었지만 생전에는 무시만 당했던 비운의 예술가들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준 선물을 알아 보지 못한 세상이 그들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을 위해
헤매고 헤매던 끝에 소피는 다행히도 단 한 명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하숙집의 가장 위층에 사는 가난한 여인이었지요. 그녀는 소피를 보고도 조용히 미소짓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어요.

그리고 소피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바쳐가며 아기를 위해 만든 일생일대의 명작, 달빛 담요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한눈에 알아 봅니다. 그 담요에는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 향기로운 솔잎, 옛날에 듣던 자장가, 장난스런 눈송이, 달빛과 별빛 등이 소피의 정성과 함께 들어 있었어요. 거미는 수명이 겨우 1~2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미가 거미줄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액체 주머니에서 생명처럼 실을 토해내는 거라고 해요. 그러니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선물이었겠어요.

세상에서 소외됐던 거미가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정성을 다한 이 이야기는 우리가 놓치고 있을 다른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들을 알아 보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어요. 혼자서만 소피의 가치를 알았던 가난한 아기 엄마가 검은 머리에 아담한 체구를 지닌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다는 것은 또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미를 싫어하던 모든 사람들은 다 백인이었고, 그 곳에서 동양인은 굉장히 드물었을 테니까요. 아마도 소외를 당해봤던 사람만이 남의 슬픔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지금까지 보았던 책 중에 거미가 가장 아름답게 그려진 이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사람들은 항상 화를 내며 털어내 버렸던 거미줄이 조금은 아름답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달빛과 거미줄로 만들었던 소피의 포근한 담요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지네요. (이윤주/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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