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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나라빚 늘고 공자금은 새고…

중앙일보

입력

나라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제2의 경제위기' 발생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재정을 빚더미에 올려놓은 '주범' 중 하나인 공적자금은 허술한 관리 운영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외환 위기 수습에 쫓겨 막연하게만 생각해온 재정 위기는 이제 실체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쓸 때는 앞뒤 안 가리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감당이 어려운 것이 빚이듯, 나라 빚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 상태다.

환란(換亂)이후 경기 유지와 실업대책 등에 투입했던 대한민국 정부 명의의 직접 채무만 1백20조원에 달하며, 금융기관과 기업 부실 처리에 지금껏 예금보험공사.자산관리공사의 채권 발행 등을 통해 1백59조원이 조성됐다.

게다가 이미 재정이 거덜나 어차피 세금으로 메워줘야 하는 공무원.군인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실상의 국가 부채까지 감안하면 나라 빚은 4백조원을 넘어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동안은 이자만 갚아왔지만 내년 이후에는 원리금 상환액이 급증하면서 빚 부담이 가시화할 전망이다. 당장 내년 예산에 잡힌 국채 및 공적자금 이자 부담만 10조원에 육박한다. 전체 국가 예산의 8.7%를 이자로 떼어놓아야 하므로 그만큼 재정의 행동반경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새 정권이 들어설 2003년은 정부보증 채무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27조5천억원으로 껑충 뛴다. 그 안에 한국 경제에 '대박'이 터지고 주가가 폭발해 공적자금을 투입한 은행들의 주식이 지금보다 10배 이상 치솟지 않는다면 자칫 공무원들의 월급을 못 주는 상황까지 예상될 정도다.

많은 전문가가 빚 갚는 일정과 방식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이유도 이런 현실적인 제약들 때문이다. 특히 나라 빚을 리스케줄링(rescheduling)하려면 채권 만기 연장 정도로는 턱도 없으며, 재정 운용방식의 전면 개편과 연금제도 개혁 등 뭉칫돈의 수급을 조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 위기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공적자금 부실 관리 사례를 보면 한탄이 절로 나온다. 감사원은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의 지원을 받은 10여개 부실 기업의 전(前)대주주들이 4억달러(약 5천억원)상당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사실을 적발하고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정부의 심사 잘못으로 퇴출돼야 할 종금사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바람에 조(兆)단위의 공적자금이 더 투입됐으며, 파산 금융기관을 담당하는 관리 인력들의 공금 횡령 등 위법행위나 도덕적 해이 사례도 다수 조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 위기는 어쩌면 정권 교체보다 중요한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재정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 경영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재정 수급 계획을 전면 재조정하면서 불필요한 누수는 틀어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공적자금 운용 실태 및 상환 계획을 점검하는 국정조사를 여야 합의로 실시하는 방안을 시급히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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