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만 표의 현실 … 미 공화당도 ‘이민법 완화’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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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젭 부시(左), 마르코 루비오(右)

해묵은 이슈였던 미국 이민법 개혁안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 임기 2기의 주요 과제로 내걸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까지 가세했다. 지난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한 라틴계 표심을 의식한 모습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델 솔 고등학교를 방문한다. 라틴계가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오바마는 이곳에서 이민개혁의 원칙을 제시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다음 달 12일 새해 국정연설에서 밝힐 전망이다.

 그러자 의회 상원의 초당파 의원 8명이 이민개혁안 초안을 28일 발표했다. 이들은 원래 합의안을 이번 주말 발표하려다가 오바마의 연설이 예고되자 바로 전날로 앞당겼다고 허핑턴포스트가 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초당적 합의안은 불법체류자들에게 시민권을 인정해주는 민주당 측 입장과 선결조건으로 국경통제 등을 내세운 공화당 측 입장을 통합했다. 쟁점이 됐던 시민권 부여는 단계적·선별적 구제를 택했다. 비자 만료로 불법체류자가 된 이들의 경우엔 벌금 및 체납세금을 내면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일할 수 있는 시험적인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어릴 때 불법 입국한 이들의 시민권 취득 조건은 상당히 완화했다. 5쪽 분량의 초안에는 이 밖에도 외국인 숙련기술자에게 영주권 부여와 이주민 취업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미 당국은 불법체류자 숫자를 1100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멕시코 출신(620만 명)을 포함해 라틴계가 78%로 절대 다수다. 공화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민 법안에 소극적이었다. 지난 대선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바마 당선에 불법이민 포용책이 주효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면서다. 당시 유권자 10%에 해당하는 라틴계 71%가 오바마를 지지했다. 공화당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은 최근 ABC 방송에 출연해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히스패닉 표를 어마어마하게 잃었다. 이것이 주요 패인 중 하나란 걸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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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초당파 개정안 그룹에 참여한 공화당 의원은 매케인 외에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제프 플레이크(애리조나) 등 4명이다. 이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이는 루비오 상원의원이다. 쿠바계 이민 출신인 루비오는 히스패닉계 유권자를 공략할 수 있는 공화당의 차기 카드로 거론된다.

 이러다 보니 공화당 내에서 또 다른 잠룡으로 지목되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견제에 나섰다. 부시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일부 의원이 숙련기술자에게 비자를 내주거나 어린 시절 입국한 불법이주민에게 합법 지위를 주는 것과 같은 단편적인(piecemeal) 변화만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루비오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미 언론은 그를 겨냥한 발언이라고 보고 있다. 루비오가 최근 의회 전문매체 ‘더 힐(The Hill)’과의 인터뷰에서 1개의 포괄 법안 대신 연계된 법안의 연속 처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젭 부시는 대신 광범위한 이민 개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는 아내가 멕시코계 혼혈이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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