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책임 영원” 아베 “답 못해” … 너무 다른 역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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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에게 속죄했다. 2001년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는 2차대전 패전 기념일을 이틀 앞두고 전범 14명의 위패가 안치된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에 공식 참배했다. 2차대전의 두 축 독일과 일본이 가장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장면이었다. 전쟁을 일으켜 5000만 명의 희생자를 냈던 양국은 그 시작은 같았어도 사후 대응은 달랐다. 1945년 패전 후 독일이 정상들의 연이은 사죄 표시로 유럽 내 신뢰를 쌓은 반면, 일본은 전쟁범죄를 부인하거나 숨기는 등 후퇴한 역사인식으로 주변국과 갈등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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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독일과 일본 지도자는 또 한번 비교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역사 인식은 전임자들과 같았다.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우리는 나치의 각종 범죄, 2차대전 희생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마침 1월 27일은 1945년 유대인 학살로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군에 해방된 날이며, 30일은 1933년 히틀러가 총리직에 임명 돼 나치가 맨 처음 정권을 장악한 날이다.

 메르켈 총리의 이번 사과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6년 이스라엘을 방문해 유대인 희생자에게 참배했다. 2009년에는 폴란드 그단스크 교외에서 열린 2차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브란트에 이어 독일 정상으로선 두 번째로 무릎을 꿇고 유럽인들에게 사죄했다.

 같은 날 일본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마이니치(每日)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는 정부 움직임에 대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관방장관에게 물어보라”고 언급을 회피했다. 이어 “헌법을 개정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과 의미는 정반대였지만 전임자들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아베 총리의 극우적 발언은 여러 차례 있었다. 총리가 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에는 “(2006~2007년) 총리 임기 중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이라고 말했다. 총리로 선출된 후에는 ▶식민지 지배 및 침략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 ▶이웃 국가를 배려한 교과서 기술을 약속한 미야자마 담화(1982년) 등 이른바 ‘과거사 반성 3대 담화’를 모두 수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의 급속한 우경화에 미국 등 주변국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동북아 전문가인 제니퍼 린드 다트머스대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고노 담화 수정 검토는 전 세계의 분노를 사고 있지만 이에 대해 가장 유감스러울 쪽은 오히려 일본 보수 진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 보수 진영이 2차대전 당시 전쟁 범죄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들의 악행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효과만 낳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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