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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배경을 둘러싸고 해석이 분분하다. 박 당선인이 생각하는 ‘총리 자격론’을 엿볼 수 있어서다. 박 당선인의 주변 인사들은 ‘법치’에 대한 남다른 중시와 함께 100일 넘게 김 후보자와 함께 일하면서 재발견한 인품·경륜에 높은 점수를 줬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 후보자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기어다녀야 할 만큼 거동이 불편했다. 학교 다닐 땐 어머니 등에 업혀 다녔다. 하지만 “물속에서 운동을 하면 걸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매일 수영장을 찾아 수중 걷기와 수영을 한 끝에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됐다. 물속에서 다리 근력을 쌓은 것이다. 하지만 며칠만 수영을 쉬면 다시 근력이 떨어져 걷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김 후보자는 수십 년째 매일 아침 6시 수영장을 찾아 한 시간씩 수중 걷기나 수영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귀에 물이 자주 들어가면서 청력이 떨어져 보청기를 끼게 됐다고 한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10월 11일 김 후보자를 대선 공동 선대위원장에 임명한 데 이어 12월 27일 인수위원장에 임명해 정권인수 업무를 지휘케 했다. 김 후보자가 박 당선인이 중시하는 몇 가지 ‘인사 코드’에 다각도로 부합하는 인물임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쪽에선 “이런 인사 코드는 향후 고위직 인선 때도 계속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중앙SUNDAY는 지난해 12월 28일 김 후보자와 가진 단독 인터뷰와 주변 인사들의 전언을 바탕으로 박 당선인의 ‘인사 코드’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① 법치 DNA
김 후보자는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박근혜 당선인에겐 법치 DNA가 있는 것 같다. 정말 법을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총리 기용 가능성은 부인하면서도 “박 당선인의 성향상 총리나 장관에 법조인이 중용될 가능성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예언이 김 후보자 본인에게 적중한 셈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한 김 후보자는 매사를 시작할 때 관련 법전부터 읽어본 뒤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게 체질화돼 있다. 이 점이 박 당선인의 ‘법치 DNA’에 부합했을 것이라고 여권 인사들은 전한다.
② 철통 보안
김 후보자는 대략 지난 10일쯤 박 당선인으로부터 총리 후보 지명 통보를 받은 것으로 여권 인사들은 추정한다. 사실이라면 김 후보자는 이 사실이 발표된 24일까지 약 2주 동안 철통 보안을 지킨 셈이다. 그는 지난 19일 “총리에 지명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내가 무슨…아니다”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만 “지금쯤 결정은 된 것 같다. 해당자는 이미 통보를 받았지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하루에 서너 차례, 많으면 대여섯 차례씩 박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화 내용이 누설된 적은 없다.
③ 자기 직분에만 충실
김 후보자는 인수위원 인선과 정부조직개편 등 핵심 사안들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법에 정해진 인수위원장직의 역할에만 충실했다는 게 주변의 일치된 평가다. 지난 4일 인수위원 명단을 발표할 때였다. 김 후보자는 그날 박 당선인 측근이 스카치테이프로 밀봉해 들고온 봉투를 통해 명단을 처음 받아 들었다. 그만큼 박 당선인의 인사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발표된 정부조직개편 역시 국정기획조정분과의 유민봉·옥동석·강석훈 인수위원이 전담하게 하되, 자신은 개입하지 않아 발표 직전까지 내용을 몰랐다고 한다. 박 당선인은 인수위원 임명 당시 인사의 일부분을 김 후보자와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결과적으로 인선 내용은 전혀 새나가지 않았다.
④ 작은 정부 철학도 비슷
김 후보자는 개인적으로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적절하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인수위에서 최대 700명까지 뒀던 자문위원직을 전면 폐지하고 전문가와 대학교수, 관료 위주로 인수위를 꾸린 것도 그런 철학에 바탕한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자문위원은 인수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건 별로 없고 정치적으로 잡음만 낼 가능성이 많아 두지 않는 게 좋겠다는 입장에 박 당선인과 김 후보자의 뜻이 맞았다는 후문이다. 한마디로 정치인보다 전문가 중심의 국정 운영을 선호하는 박 당선인의 성향과 비슷하다. “어느 누구에게 빚진 일 없고 법 앞에 부끄러운 일을 한 적 없다”고 강조하는 것도 박 당선인과 김 후보자의 공통점이다.
⑤ 솔직하고 소탈한 성격
김 후보자는 최근 보청기를 최신형으로 바꾸고, 휴대전화 단말기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후보자는 박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말 인수위원장 내정을 알리자 “네?(인수위를 운수업으로 잘못 들은 것으로 전해짐) 저는 운수업은 하나도 모르는데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김 후보자는 박 당선인과 통화하면서 귀에 잘 안 들리는 대목이 많아 해프닝이 잦았다고 한다. 그럴 때면 큰 소리로 “○○○라고 말씀하신 거죠?”라고 되묻는 경우가 가끔 생겼다. 결국 김 후보자는 “돈이 아무리 들더라도 좋은 보청기를 마련하시고, 휴대전화도 장만하시라”는 권유에 따라 보청기를 최신형으로 바꾸고 자신의 비서 것을 써오던 스마트폰도 본인 명의로 장만했다고 한다. 박 당선인이 김 후보자에게 보청기와 휴대전화를 장만토록 부탁한 건 김 후보자를 67일간 일할 인수위원장만이 아니라 총리로 중용해 오래 함께 일하려는 취지였을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자는 그동안 휴대전화 없이 살아왔다. 지인들과 급하게 통화해야 할 경우에는 운전기사 겸 비서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으론 전화번호를 어떻게 누르는지도 몰랐다. 스마트폰 창에 뜬 ‘일시정지’ 버튼을 보고 “이 전화가 끊어진 건가?”라고 물어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을 만큼 ‘폰맹’이었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원장 지명을 통보하기 위해 밤중에 전화를 했을 때도 운전기사가 받아 “지금 주무시고 계신다”며 끊었다가 뒤늦게 김 후보자가 전화를 걸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 김 후보자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성품이 드러나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 후보로 지명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와 함께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은 2급 지체장애인이지만 온갖 역경을 딛고 헌재소장까지 오른 인간 승리의 의지력도 작용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강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