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베를린이냐 하면 … 그 도시가 날 불렀기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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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류승완 감독. “유명한 감독보다 유능한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다. [박종근 기자]

남북요원의 첩보전을 그린 영화 ‘베를린’이 31일 개봉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라한 장풍대작전’ ‘부당거래’ 등 액션에 강점을 보여온 류승완(40) 감독이 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 등 톱배우들과 함께했다. 순제작비만 100억 원이 넘는 다.

 이야기는 이렇다. 독일 베를린에서 첩보활동을 하는 북한요원 표종성(하정우)과 그의 부인 련정희(전지현)가 동명수(류승범)의 공작으로 누명을 쓰게 된다. 표종성은 쫓기기 시작하고, 남한 정보요원 정진수(한석규)까지 얽히게 된다. 냉전과 분단의 상징도시 베를린이 풍기는 비밀스런 분위기 위로 긴박한 첩보전이 펼쳐진다.

 류승완 감독(40)을 23일 만났다. 그는 “부담감이 너무 커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첩보전에 대한 시험을 보면 만점을 받을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

 “몇 년 전부터 스파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경제 스파이를 다뤄볼까 했다. 그러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완역본을 읽게 됐다. 완전히 반했다. 누명을 쓴 남자가,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었다. 자연스레 우리 현실에 눈길이 갔고, 남북의 얘기로 풀게 됐다.”

 -왜 베를린인가.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탈출한 곳,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의 배경이다. 우리와 관련이 깊다. 베를린영화제에 갔을 때 ‘앗 여기다’ 싶었다. 그 도시가 나를 불렀다.”

 -남북관계 묘사가 쉽지 않았을 텐데.

 “스파이 세계에는 거짓과 진실이 모호하다. 엄청난 취재가 필요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다 바꿔야 했다.”

 -표종성(하정우)이 유리돔으로 떨어지는 장면 등, 공간을 적극 활용한 액션 장면이 많다.

 “늘 주변 공간을 유심히 본다. 라트비아 리가의 현지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면서 위를 올려다보다가 ‘아, 련정희랑 표종성이 저 집에서 이렇게 떨어지면 되는데’라는 말을 뱉었고, 결국 아수라장이 됐다.”(웃음)

 -멜로는 처음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표종성은 아내보다 신념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신념에 균열이 생겼을 때야 비로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아내를 돌아보게 된다. 그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라는 신념만 바라보다, 아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도 잘 모르고 그러니까.”

 -전반부가 복잡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전반부 1시간을 집중해서 봐주신다면, 점점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즐기실 수 있을 거다. 워낙 등장인물이 많아서 어느 하나를 붙잡고 늘어질 수가 없었다. ”

 -한석규 비중이 생각보다 작다.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처음에 정진수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한석규와 함께하게 될지 몰랐다. 나중에, 한석규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분위기에 욕심이 났다. 한국 중년 남성의 어떤 쓸쓸함을 담아내고 싶어서 중간에 컨셉트를 바꾸게 됐다.”

 -배우들이 북한말을 한다. 관객들이 낯설어 하지 않을까.

 “북한말에 외국어에, 배우들이 손해를 많이 봤다. 그렇다고 평양 사람을 쓸 수는 없지 않나. (웃음) 가짜 같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다음에도 액션극인가.

 “액션이 주는 율동미가 여전히 좋다. 어느 때보다 격변기였던 1940~50년대 근·현대사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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