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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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달을 사랑하고 또 동경해온 민족이었다. 한국의 고전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달의 노래, 향가의 「??주생가」·백제의 「정읍사」이다. 먼데서 예를 구할 것 없이 웬만한 집 치고 달 그림이 없는 병풍은 없을 것이다. CM송 노래나 부르고 다니는 근대화된 아이들도 여전히 「반달」노래와 「달아 달아 밝은 달아」의 노래를 애창곡목의 하나로 삼고 있다.
서양친구들은 전??적이고 행동적이라 달보다는 태양을 더 많이 노래불렀던 것 같다. 애인을 향해서도 「오! 나의 태양」이라고 하지 「오! 나의 달님」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서양 사람보다 달을 사랑하고 동경했던 동양인이지만, 달나라에 먼저 갈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다. 이태백의 후손보다 지금 달 덩어리를 한낱 돌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이 먼저 달을 향해 발 돋움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다. 「빌딩」을 짓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고 원??을 제조한 것까지는 그저 덮어두자. 그러나 달나라를 우리보다 서양인들이 먼저 발디딜 생각을 하면 좀 억울한 일이다.
우리는 결국 달을 짝 사랑한 셈이 되어버렸다. 「서베이어」1호의 통쾌한 「소프트·랜딩」에 박수를 치다가도 어쩐지 울적한 생각이 드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우리는 달을 그냥 먼 빛으로 보고만 있었다. 사랑하는 달을 소유하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적극적 행동을 생각지 않았다. 기껏해야 병풍 쪽 노송에 달 그림을 그리고 송편을 빚어가며 완월의 정만 나누었을 뿐이다.
비단 달뿐이었을까? 동양, 그리고 한국의 낙후성은 명상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적극적인 ??험을 몰랐기 때문이다. 왜 그토록 달을 사랑했으면서도 월 세계로 가보려는 불가능에의 도전을 하지 못했던가? 매사가 다 짝사랑식이었다. 그래서 행동적이고 ????적인 서양인들에게 많은 연인들을 빼앗겼던 것이다. 「서베이어」1호의 성공을 축하하는 이태백의 후예들은 한번쯤 자기자신을 돌아다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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