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운드 시대] 일본에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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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농업은 겉으론 조용해 보이지만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의 파고에 부닥쳐 있는 것은 한국과 같다.

다른 점이라면 개방을 거스르기보다 적절하게 흐름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1999년 관세를 물고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관세화)했다. 대외적으론 개방이지만 관세율이 1천3백%나 돼 수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또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정해진 최소시장접근물량(MMA)으로 연간 76만t의 쌀을 들여오지만 모두 가공용으로 쓰기 때문에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형식적으로 시장을 열었지만 실질적으론 닫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도 높은 관세에 의존한 시장보호가 오래 지속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 뉴라운드에서 농산물 관세의 대폭 인하가 쟁점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농업의 단계적인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95년 계획경제적인 색채가 짙은 식관법(食管法)을 없애고 시장원리를 도입한 식량법(食糧法)을 시행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주로 생산.유통 구조를 바꾸는 데 초점을 둔 이 법은 정부나 농협이 정책적으로 사주는 쌀(계획유통) 외에 농민이 자유롭게 시장에 내다팔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이로써 품질에 자신이 있는 농가는 알아서 판로를 개척할 수 있게 됐다. 그 뒤 경영감각이 있는 농가를 중심으로 값비싼 '브랜드쌀'을 잇따라 개발했다. 지금은 계획유통에 의한 쌀과 생산자가 자유롭게 판매하는 쌀이 반반이다.

이는 수요에 따른 공급조절 기능을 정부가 아닌 농가의 책임으로 돌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농가가 시장수요를 예측해 스스로 적절히 생산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농업이 정부의존적인 체질에서 벗어나 시장개방에 견뎌낼 체력을 키우도록 서서히 유도하고 있다.

그래도 식생활의 변화로 쌀 재고는 넘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논의 일정 면적을 놀리거나 다른 작물을 심도록 하는 대신 보조금을 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2백70만㏊의 논 가운데 1백10만㏊에만 쌀농사를 짓도록 했다. 그래도 쌀 재고가 2백30만t에 이르러 대외원조와 사료용으로 돌리고 있다.

일본이 별다른 마찰없이 쌀의 관세화를 실시한 것은 재고 관리에 드는 비용이 자꾸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일본 농민들도 쌀농사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전체의 10%도 안돼 걱정은 하면서도 저항은 하지 않고 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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