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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제일주의가 부른 인수위 부실 브리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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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경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22일 오후 3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미디어지원실로부터 문자 한 통이 왔다. ‘진영 부위원장이 오후 4시 정부조직개편 후속 조치를 발표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 각 부처의 기능을 어떻게 조정할지가 문자 발송 한 시간 뒤에 공개됐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가 한창일 때였다. 인사청문회 때문에 23일께 발표될 것이란 인수위 주변의 관측은 빗나갔다.

 인수위는 당초 정부조직개편 후속 조치를 청와대 개편안과 같은 날 발표하겠다고 했었다. 지난 15일 김용준 위원장은 정부조직개편안 발표문에서 “기타 위원회는 차후 청와대 조직개편안 발표 때 함께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청와대 조직개편안은 21일, 정부 조직개편 후속 발표는 22일 따로따로 발표됐다.

 이유는 뭘까. 한 인수위원은 “정보가 샐 틈이 없도록, 결정되는 대로 바로바로 발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개편안이 언론에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 정부조직개편안 후속 조치가 정리되지 않았지만 먼저 발표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까지 벌어졌다. 윤창중 대변인은 21일 점심 식사를 하다가 오후 4시에 청와대 개편안을 브리핑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가 브리핑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세 시간쯤이었다. 당연히 그의 브리핑은 엉성할 수밖에 없었다. 윤 대변인은 “지금의 청와대 3실 8수석 체제를 2실 9수석으로 단순화한다”고 발표했다. 팩트(fact)에 어긋나는 내용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체제는 2실 9수석 6기획관 체제다.

 기자들이 새로운 청와대의 조직도를 요구하자 그는 “조직도를 드려도 언론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 청와대 조직은 과거보다 슬림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근거가 되는 각 수석실 산하의 비서관 숫자에 대해선 “정해진 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인수위 스스로 부실한 브리핑이란 생각이 들었던지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이 ‘작은 청와대’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하러 나왔다. 그러나 그 역시 답변이 추상적이었다. “사람도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조직도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유민봉 국정기획조정 간사가 다시 한 번 공개 브리핑을 하러 나와야 했다.

 인수위의 운영 원칙 1호가 보안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확정되지 않은 사실이 잘못 알려지면 혼선을 일으킨다는 취지다. 오후 4시의 ‘기습 발표’도 이런 보안제일주의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기습 발표에 따른 부실한 브리핑은 국민의 궁금증만 증폭시키거나 또 다른 혼선을 몰고 올 게 뻔하다. 대변인조차 오후 4시에 발표될 사실을 점심 먹다 통보받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김경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