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정(農政) 패러다임 바꿔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21세기 세계 교역질서의 새로운 규범인 뉴라운드가 14일 세계무역기구(WTO) 1백44개 회원국의 각료선언문 채택으로 공식 출범하게 됐다.

한국은 앞으로 통상장벽이 낮아지게 됨에 따라 수출과 산업생산이 늘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6~2.9%포인트 증가(대외경제연구원 추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뉴라운드체제에서 2005년 이후 대폭 개방이 불가피해진 쌀을 비롯한 국내 농업분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정의 일대 혁신에 나서야 한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 이후 정부가 범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지난 7년간 농어촌구조개선사업에 42조원, 농어촌특별세로 15조원 등 57조원이 농업분야에 투입됐지만 줄여야 할 쌀농사 비중과 농가부채만 늘렸을 뿐 성과는 보잘것없다.

농업소득 중 쌀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95년 38%에서 지난해 52%로 늘어났지만 중요한 경쟁력 지표인 가구당 벼 재배면적은 같은 기간에 0.9㏊에서 1.0㏊로 제자리 걸음을 했다. 해마다 추곡 수매가.수매량을 올려주고 늘려준 미봉책이 이같은 농정실패에 한몫을 했다.

더 이상 미봉책에 머물 때가 아니다. 농정의 기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절박한 시점에 왔다.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이 택했던 대로 농지면적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면서 쌀값에도 시장기능을 도입해 가격을 국제시세에 접근시켜야 한다.

7년 전 3~4배에서 오히려 6배로 늘어난 쌀값 격차를 어떻게든 줄여야 개방의 충격도 줄일 수 있다. WTO 규정에 저촉되는 추곡수매제 역시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휴경(休耕)직불제 도입도 적극 검토 대상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 농업의 지향점을 고품질.고효율에 친(親)환경형 농업으로 분명히 전환해야 한다. 곳곳에서 값비싼 고기능 쌀이나 특용작물이 속속 출현하는 것을 보면 가능성은 있다. 재원마련이나 농지감축 등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경쟁력있는 농업을 만들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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