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격경쟁에 가이드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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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의원입법된 '출판 및 인쇄 진흥법안'은 마땅한 기준이 없이 표류하던 출판.서점계의 유통문제를 국회에서 공식 논의한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공청회를 통해 이해 당사자간 조율을 거쳐 법안이 통과된다면 출판유통계의 판도를 바꿀 획기적 법안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 영역간의 이해를 조율하려는 이 법안에 이견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여야 의원 28명의 공동발의로 제출된 법안의 핵심 안건은 '책 값 할인 10%한도 공식화'그리고 '전자 출판물의 출판사 관할 범위 규정'이다.

◇ 책값 10%할인 한도제='책 값 할인'문제는 출판.서점계의 최대 현안이다. 출판 관계자들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제살깎기 할인경쟁'이 계속되면 출판계의 공멸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표명한다. 이번 법안은 그러한 우려와 여론을 반영해 국회에서 공식 논의를 통해 합의된 원칙을 세우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발행 1년이내 간행물의 10% 할인 한도 규정과 이를 초과해 할인할 땐 최고 3백만원 과태료 부과'를 특징으로 하는 이번 법안에 대해 대한출판문화협회.한국출판인회의.한국서점조합연합회.한국출판연구소 등 국내 출판.서점계 관계자들은 환영의 뜻을 표하며 출판유통의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창연 회장은 "과태료 3백만원은 액수보다 상징성이 있는 제도개혁"이라며 "이번 법안을 통해 일반 공산품과 다른 도서출판의 특수성이 강조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도 "스크린쿼터제가 한국 영화를 살리는 기반이 됐듯이 최소한 이번 법안 정도는 돼야 국내 출판이 사는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지지했다.

지난 2년간 인터넷 서점과 대형 쇼핑매장의 책 값 할인으로 촉발된 도서정가제 붕괴는 중.소형 서점의 잇따른 도산과 도매상의 부도 위험으로 이어졌다.

출판시장의 실핏줄로 여겨지는 동네 서점들이 지난해 1천1백36곳이 문을 닫았고, 올해 들어서도 전국적으로 이미 약 6백곳의 서점이 줄었다. 최근 한 도매상의 부도는 3년전 대형 도매상 연쇄부도의 악몽을 연상시킨다고 출판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출판유통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여론으로 모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유통 체제의 도입과정에 치러야하는 구조조정의 하나로 전세계적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법안이 발의되기까지 논의과정에 참여한 예스24, 알라딘, 와우북 등 대표적 온라인 서점측은 '배송료'를 반영해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알라딘의 조유식 대표는 "이번 법안은 주로 중.소형 서점의 이해관계가 고려되었다"면서 "배송료 2천원이 추가될 수 밖에 없는 온라인 서점엔 불리한 조건"이라고 반발했다.

또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인터넷 서점의 할인된 가격과 접근의 편리함은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유통의 현실로 자리잡았다"고 조대표는 덧붙였다.

이 법안의 발의를 주도한 심재권(민주당) 의원측은 "인터넷 서점의 배송료 문제는 법안으로 명시하기 보다 유통과정에서 기술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옥화영 유통거래과장은 "아직 공식 의견을 밝힐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 전자 출판물의 범위='전자 출판물의 관할권'에 대한 조항도 이번 법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한다. 출판 행위가 없다면 디지털 콘텐츠도 존재할 수 없다는 출판계의 여론을 이번 법안에 반영한 것이다.

이는 온라인 콘텐츠를 누가 관장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의 이해가 대립해온 부분이다. 디지털 콘텐츠는 모두 정통부의 범위에 넣으려는 일부 주장과 달리 이 법안은 출판사가 주체가 돼 온라인으로 전송하는 콘텐츠는 출판사의 지적 저작물로 간주해야 한다고 규정해 온라인의 일정 부분을 문광부가 관할할 여지를 마련했다.

지난 7월 정통부와 문광부는 "전자출판물 콘텐츠의 진흥과 육성은 문광부가 맡고, 정통부는 기반 기술의 개발을 관할하기로 합의했다"고 문광부 박광무 출판진흥과장은 밝혔다.

정통부 최재유 지식정보산업과장은 "지난 7월에 그런 합의를 한 적 있다 "고 말했다. 최과장은 "하지만 의원입법 형식이라 이 법안을 아직 보지 못해 공식 견해를 밝히기 이르다"면서 "일부 조항에 다소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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