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가드 주의보 … 화·수요일마다 셀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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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에 ‘화·수요일 뱅가드(Vanguard) 주의보’가 떨어졌다. 상반기 내내 화·수요일마다 미국계 초대형 펀드 운용사인 뱅가드 그룹이 한국 주식을 대량 처분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다. 국내 증권사들이 지난 10~16일 1주일간 뱅가드의 동향을 분석해 내린 1차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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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가드는 지난해 말 “한국 주식에 투자한 총 90억 달러(약 9조5000억원)를 1월 10일부터 빼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기준으로 삼는 지수(인덱스)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서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로 바꾼 데 따른 것이다. MSCI는 신흥국 중에 한국을 포함하고 있으나 FTSE 신흥국 지수에서는 한국이 빠져 있다. 뱅가드는 90억 달러를 한꺼번에 뺄 경우 한국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7월 3일까지 25주간 매주 4%(금액 기준)씩 줄여나간다는 일정표도 내놨다. 정리 첫 주인 지난 16일까지 보유분을 96%로 줄이고, 일주일 뒤인 23일까지 92%로 재차 축소하는 식이다. <2012년 12월 21일자 B8면>

뱅가드가 매주 팔아야 하는 ‘4%’는 3800억원어치다. 삼성전자를 매주 907억원, 현대차는 182억원어치씩 내다 팔아야 한다. 국내 주식시장을 흔들기에 충분한 규모다. 증권사들이 뱅가드의 ‘셀 코리아’ 첫 주인 10~16일 동향에 주목한 이유다.

 분석 결과 뱅가드의 처분 전략은 “화·수요일에 팔고, 돈이 될 것 같은 주식은 처분을 늦춘다”로 요약됐다. 일단 화·수요일인 지난 15일과 16일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540억원 안팎 순매도했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15, 16일 이틀에 걸쳐 외국계 증권사인 C사·L사를 통해 삼성전자 대량 매도 주문이 쏟아져 나왔다”며 “뱅가드가 처분한 것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이틀간 나온 삼성전자 순매도 물량 1080억원어치 중 상당 부분이 뱅가드 것이라는 얘기다.

외국인들은 17일에도 삼성전자를 956억원 순매도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뱅가드 물량이 아니라 15, 16일 뱅가드의 처분을 확인한 외국인들이 뒤이어 삼성전자를 판 것 같다”고 해석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인덱스를 따라 규칙적으로 투자하는 뱅가드의 특성상 당분간 화·수요일에 한국 주식을 정리하는 것을 반복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뱅가드가 물량을 많이 쏟아낼 삼성전자 같은 주식은 화·수요일 약세를 보이는 양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뱅가드 추정 물량이 쏟아진 15일과 16일 이틀 새 155만2000원에서 149만2000원으로 6만원(3.9%) 하락했다.

뱅가드는 10~16일 금액 기준으로 정확히 보유 중인 한국 주식의 4%를 팔았다. 하지만 종목별 처분 비율은 저마다 달랐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이 기간 뱅가드는 갖고 있던 효성 주식의 25%, 두산중공업과 기업은행 주식의 20%를 정리했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4%, 현대차는 1.4%를 파는 데 그쳤다. 들고 있던 한국 주식 111개 중 첫 주에 판 것은 40개뿐이었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투자 비중이 워낙 큰 삼성전자는 ‘4%씩’이라는 원칙을 지키지만, 나머지는 기대수익에 따라 매도 시기를 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은 “뱅가드와 더불어 신흥국 상장지수펀드(ETF)의 양대 축인 아이셰어즈(iShares)를 통해서는 한국으로 투자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며 “아이셰어즈가 뱅가드의 한국 주식 매각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뱅가드그룹

인덱스 펀드의 창시자 존 보글이 1975년에 만들었다. 인덱스 펀드란 코스피지수처럼 특정 지수의 움직임에 맞춰 수익 또는 손실이 나도록 설계된 펀드다. 현재 뱅가드가 운용하는 해외펀드 규모는 1954억 달러(약 210조원)에 이른다. 한국에선 삼성전자를 비롯한 111개 종목에 143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뱅가드가 기준 지수를 MSCI에서 FTSE로 바꾼 것은 이용료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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