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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기피하기엔 너무도 탐나는 색, 빨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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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306호 28면

요즘 문화계 화제는 단연 영화 ‘레미제라블’이다. 개봉 한 달 만인 지난 금요일 누적관객수 500만 명을 돌파했다. 뮤지컬 영화인 만큼 여러 노래가 화제가 됐고 OST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중에 평소 색채에 민감한사람이면 특히 흥미로울 노래가 있다. 바로‘Red and Black’.

이 노래는 원작소설과 영화의 배경인 1832년 6월 파리 봉기를 계획하며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다. 비록 자유를 억압하던 샤를 10세의 반동정치가 1830년 7월 혁명으로 물러가고 루이 필리프의 입헌군주제가 들어섰지만 급진적인 학생들은 공화제를 원했다. 대혁명과 7월혁명의 주축인 부르주아계급이 그들이 쟁취한 참정권을 노동계급에게까지 확산시키려 하지 않고 극심한 빈부 차를 방치한 것도 봉기의 이유였다.

이때 학생운동의 리더인 앙졸라는 이렇게 노래한다. “빨강-분노한 이들의 피! 검정-지난 시대의 암흑! 빨강-여명을 맞는 세계! 검정-결국 끝나고 마는 밤!” 학생들은 마침내 붉은 깃발을 삼색기와 함께 휘두르며 6월 봉기에 들어간다(사진).

앙졸라의 노래 가사처럼 빨간색은 전통적으로 피와 분노, 급진적 변화와 결부되곤 했다. 그러니 19세기 들어 유럽에서 활발해진 봉기와 혁명, 시위에 붉은 깃발과 붉은 띠가 단골로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20세기 초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때 빨간색이 특히 집중적으로 쓰였다. 그리고 냉전시대에 돌입하면서 빨간색은 공산주의 국가들의 애용하는 색깔이자 이들 ‘빨갱이’를 싫어하는 자본주의 진영이 다소 불편해하는 색깔이 됐다. 이런 붉은색 공포증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한국이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은 데다 분단국가에서 군사정권이 반공주의를 공고히 하면서 붉은색은 철저히 터부시됐다.

그렇다면 이 시기를 지내온 장년층과 노년층은 영화 ‘레미제라블’ 후반부를 뒤덮는 붉은 깃발이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마침, 영화가 끝나고 박수까지 치셨다는 나이 지긋한 지인으로부터 재미있는 말씀을 들었다.“2002년 월드컵 때 ‘붉은악마’의 광화문 응원을 보고 놀랐다가 적응한 뒤 예전처럼 학을 떼진 않게 됐어. 게다가 요즘은 여당이 온통 빨간색으로 하고 다니더라고?”

흥미롭게도 지금은 보수여당이 붉은색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여당이 지난해 2월 상징색으로 전통의 파란색을 버리고 빨간색을 채택했을 때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빨간색은 6·25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공포다” 등등.

그럼에도 광고 카피라이터 출신 조동원 당시 기획홍보본부장은 빨간색을 밀어붙였다. ‘붉은악마’ 응원에서 드러난 것처럼 빨간색은 “젊음과 열정의 색깔”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빨강은 기피하기에는 너무나 눈에 띄어서 탐나는 색깔이다. 게다가 상징하는 것이 다양하고 다층적이다. ‘레미제라블’의 ‘Red and Black’에서 앙졸라의 동료학생운동가인 마리우스는 붉은색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장발장의 양딸 코제트를 보고 사랑에 빠진 상태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한다. “빨강… 나는 내 영혼이 불타는 걸 느껴. 검정… 그녀가 없다면 내 세계가 그렇겠지. 빨강… 욕망의 색깔! 검정…절망의 색깔!”

이런 상징은 서구회화에서 즐겨 쓰였다.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인생의 춤’을 보면 한 여인이 사랑과 정열을 불태우는 젊은 시절에는 붉은 옷을, 쇠락한 노년 시절에는 검은 옷을 입은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니 이미지 전략에 있어서 빨간색을 기피하지 않으면 그 색깔의 여러 긍정적인 함의를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보수여당이 과거에 그들이 터부시한 붉은색을 택하는 것은 좀 더 중도적인 정책으로의 전환, 탈(脫)이념 갈등, 혁신 등의 의지를 나타내 중도층의 호감을 살 수 있다. 이런 전략으로 그들은 빨강을 채택했고 대선 결과로 보건대 성공이었다.

특정 정당을 칭찬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당이 야당 지지자들의 냉소와 우려처럼 이미지만 혁신을 한 것인지 그에 걸맞게 내용도 혁신하며 중도층을 끌어안고 나아갈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어쨌거나 여당은 디자인과 이미지 전략에서 영리한 선택을 했으며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붉은색 공포증을 역이용한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이런 이미지 전략은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의 브랜드를 세우는 데서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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