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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대장 아베, 글로벌 리더 아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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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기세가 무섭다. 일본 국내는 그의 독무대다. 아베는 “일본을 되찾겠다”는 슬로건으로 지난달 총선에서 압승했다. 요즘 TV에선 그의 경제 회생 전략 이야기뿐이다. 돈을 무한대로 풀어 디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아베노믹스다. 7년 만의 폭설로 도쿄가 마비되고, 일본인들이 알제리 무장 세력에 인질로 잡히는 사건 정도가 터져야 TV 톱뉴스에서 아베를 밀어낼 수 있다. 그의 의도대로 주가는 상승세에 엔화 가치는 떨어졌다. 힘을 받은 아베는 전매특허인 극우사업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새 역사 담화 발표, 개헌 등이다. 결론은 여름 이후에 낸다지만 준비는 착착 진행 중이다.

 그런 아베가 최근 “실수로 잘못된 메시지가 나갈 수 있다”며 기자들의 즉석 질문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사히(朝日)나 마이니치(<6BCE>日) 같은 진보신문의 까칠한 기자들을 상대하느니 네티즌들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뜻이다.

 아베에게 인터넷은 어떤 공간인가. 일본에서 인터넷은 우익의 놀이터다. 총선 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의 토론 신청에 아베는 “인터넷 생중계로 붙자”고 답했다. 그러자 노다 측은 “자기네 집에서 싸우자는 거냐”며 불쾌감을 드러냈었다.

 ‘네트우익’라고 불리는 인터넷 우익 집단은 아베의 든든한 후원자다. 이들의 인터넷 놀이는 ‘외국인들에게 뭔가 뺏기고 있다’는 막연한 박탈감에서 시작됐다. 한국인과 중국인에 대한 비이성적인 혐오감 표출이 이들의 일상이다. 얼마 전 억대 수입을 올리는 연예인의 어머니가 국가에서 생활보호비를 받아 논란이 되자 이들은 “재일동포들이 일본인보다 생활보호비를 더 받는다”며 엉뚱하게 물줄기를 틀었다. 또 “김연아가 우승하면 태극기 게양식을 중계하지만, 아사다 마오가 우승하면 히노마루(日の丸·일장기) 게양식을 잘라버린다” “설문조사를 조작해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김치찌개라고 발표했다”는 허위 사실로 한류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사를 초토화시켰다.

 고노 담화 수정과 우익 교육 강화 등 아베의 메뉴들은 곧 이들의 메뉴다. 아베의 총선공약집 표제인 ‘일본을 되찾겠다’는 “일본을 되찾기 위해 특정 아시아(한국·북한·중국)와 싸운다”는 네트우익들의 언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만으로는 성이 안 차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 태극기를 밟아대고, 아베를 비판한 언론사 건물 앞에서 항의 집회를 벌이는 집단도 모두 네트우익이다.

 아베는 지금 고빗길에 서 있다. 그가 ‘최고의 친구’로 여기는 미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언론들이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아베의 역사인식에 강력한 경고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베의 역사인식을 지역과 세계의 평화를 해치는 위협 요소로 판단한 것이다.

 편협한 우익의 골목대장이 되느냐, 존경받는 글로벌 리더가 되느냐의 칼날 같은 심판대에 아베가 올라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