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상인 살리니 대형마트 일자리 줄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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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기도 남양주에서 시금치와 열무·부추 등을 재배해 이마트에 납품하고 있는 농업회사 ‘지은’.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대형마트 휴무가 시행되면서 월 10억원 수준이던 매출이 8억원대로 줄었다. 김영걸 이사는 “배송기사 2명을 내보내고 포장사원 월급도 10%가량 줄인 상황”이라며 “요즘은 생존을 위한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 서울 잠실점에 있는 음식점 ‘씨앤모아’ 역시 의무휴업 이후 아르바이트생을 15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 양동열 대표는 “매출이 8%가량 감소해 이들부터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도 된서리를 맞았다. 홈플러스는 14일부터 신규 출점 업무를 담당하는 임직원 17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회사 측은 “유통산업발전법과 각종 규제로 신규 출점이 사실상 어려워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홈플러스에서만 지난해 2000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중소상인 보호 명목으로 시작된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 강화가 또 다른 약자의 피해를 부르고 있다. 눈앞의 문제가 해결되는 대신 다른 문제가 불거지는 ‘풍선 효과’의 악순환인 셈이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유통산업발전법 시행으로 매출 5조3000억여원, 일자리 2만여 개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농어민과 중소 납품회사·입점업체가 손해를 떠안아야 하는 처지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김준봉 회장은 “지난해 농어업 법인의 매출이 2011년보다 23.4% 감소했다”며 “농축산 업계의 타격이 이렇게 심각한데 농어촌 출신 국회의원들은 왜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기껏 중소기업을 위한다고 펼친 정책이 외국계 기업에 기회만 터준 경우도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재생타이어 사업을 중기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면서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 등 국내 대기업이 발을 빼자 브리지스톤·미쉐린 등 외국 브랜드가 진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건국대 이장희(경영학) 교수는 “실효성이 의문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도 한번 시행되면 되돌리기 어려운데 정치권이 너무 일방적으로 경제계를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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