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려운 경제도 다 우리 주변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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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그러니까 소비자는 모든 상품의 첫 번째 소비에서 가장 큰 한계효용을 누린다. 소비단위가 늘어날 때마다 처음의 만족이 감소하는 것은 한계효용이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건 정말 우리 일상 생활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개념이다.

일상 생활의 사례로 익히는 경제학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가 없다. 지갑의 돈에 대해서는 그처럼 민감한 사람들이 경제학이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동서문제연구원장인 정갑영 교수는 그런 점에서 특이한 사람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면 정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항상 처음 경험하는 일에 가장 큰 감흥을 받는다. 첫사랑을 못 잊는 것도, 새 옷을 즐겨 찾는 것도, 남이 갖지 않은 새것을 원하고,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 용기도 모두 이에서 비롯된다. 모든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다짐처럼 추진한다면, 우리 사전에도 불가능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학교에 입학하여/새 책을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한다면…”으로 시작하는 정채봉의 시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을 덧붙인다. 이처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과 같은 복잡한 개념도 정 교수에게 가면 누구나 가진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나 따뜻한 내용의 시로 바뀐다. 정 교수가 이번에 펴낸 《열보다 더 큰 아홉》(매일경제신문사)은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골치 아픈 개념들을 우리 일상으로 끌어내린다.

“예컨대 결혼에서 거래비용이라는 경제적인 합리성을 찾아내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에게서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읽어냅니다. 하지만 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상을 경제학적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즉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예를 통해 골치 아프게만 여기는 경제학적 개념을 널리 알리겠다는 얘기죠.”

《열보다 더 큰 아홉》은 2년 전부터 정 교수가 주간 경제시사지 《매경이코노미》에 연재해온 ‘정갑영의 풀어쓰는 경제학’이라는 칼럼에 실렸던 내용을 담았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사랑의 메신저였던 18세기의 사랑의 기사, 뮤지컬 ‘드라큘라’, 김용택의 시 〈그대 생의 솔숲에서〉 등을 자유자재로 동원해 일반인과 경제학 원론의 가교 역할을 한다. 정 교수가 이 책으로 인해 일반인들이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서 집필에 나섰다.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의 경제적 논리
“경제란 효율을 추구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열 명 중에서 다섯 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과 한 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다섯 명을 구할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게 경제 행위입니다.

예컨대 실직 상태라 해서 이웃집이 돈 쓰는 것을 막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별로 유용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소비하는 사람이 있어야 고용이 창출되거든요. 이런 식으로 개개인이 우리 경제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고 이해하게 될 때 우리 경제도 나아질 테니까요.”

정 교수가 설명하는 경제 행위를 좀더 넓은 범위에서 이해하면 삶의 지혜도 나온다.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경제적으로 어떻게 봐야만 할까? 정 교수는 거기에 금전적인 이익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지만 정신적인 만족감은 남는다고 덧붙인다. 어쩌면 정 교수가 기회비용이 큰 대중적인 글쓰기에 힘들어 하면서도 이처럼 책까지 묶어내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김연수/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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