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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쟁이 동생을 위한 오빠의 상상력

중앙일보

입력

온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빨간 머리 앤』을 기억하시나요? 정말로 재미있는 이 이야기에서 몽상가 앤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주위의 모든 사물들에게 새 이름을 붙여 줍니다.

기차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마주친 사과꽃이 만발한 가로수길은 ‘기쁨의 하얀 길’로, 아름다운 벚꽃나무는 ‘눈의 여왕’으로 불렀지요. 앤은 항상 말했어요. “어머나, 상상을 하지 않고 산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요!”

그림책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로렌 차일드 글×그림, 조은수 옮김, 국민서관)의 주인공 찰리와 롤라가 이 말을 다시 한다면 아마 이럴 거예요. “어머나, 상상을 하지 않고 먹는다면 얼마나 맛이 없을까요!”

편식쟁이 동생을 위한 오빠의 상상력
콩, 당근, 감자, 버섯, 스파게티 그 밖에도 엄청 많이! 롤라는 정말 안 먹는 음식이 많은 편식쟁이 여자 아이였습니다. 게다가 싫다는 이유도 아이답게 너무 막무가내였어요. 먹어 보지도 않고 당근은 토끼나 먹는 거라서 싫고, 콩은 작고 초록색 투성이라서 싫다는 거였답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한번 슬쩍 보고 마음에 안 들어 한 셈이지요.

그래서 오빠 찰리는 좋은 수를 하나 냈어요. 바로, 당근과 콩과 감자와 생선튀김에게 ‘앤'처럼 상상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것입니다. 이름을 새로 붙여준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사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서 깊이 이해했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지요. 아이들의 세계에서 ‘당근’은 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근 빛깔처럼 붉은 목성에서 나는 열매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편이 더 자연스러운지도 몰라요.

롤라는 한번 이렇게 오빠의 상상에 넘어가게 되자 점점 그 새로운 인식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처음에 당근이 목성에서 나는 ‘오렌지뽕가지뽕’이라고 들었을 땐, “내 눈에는 그냥 당근처럼 보이는데.” 라고 의심을 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한번 맛이나 볼까 해서 한 입을 먹게 됩니다. 그 다음에 콩이 초록 나라에서 나는 ‘초록방울’이라고 들었을 땐, 그 말을 의심하지는 않고 그냥 초록빛 나는 건 안 먹는다고 해요. 벌써, 롤라가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의 벽이 많이 무너진 것이지요. 그리고 일단 먹어본 후에는 꽤나 맛있다고까지 합니다.

세 번째로, 찰리가 으깬 감자를 ‘구름보푸라기’라고 말하자 롤라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구름을 먹는 건 아주 좋아한다면서 한 가득 떠달라고 합니다. 상상력의 세계에 점점 더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롤라의 모습이 보이지요? 이제 생선튀김이 인어들이 먹는 ‘바다얌냠이’라고 하자 한술 더 떠서 엄마랑 슈퍼마켓에 가서 본 적이 있다고까지 합니다. 먹어 본 적도 있는 거 같다고 하며 “이거 더 없어?” 라고 말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오빠가 초대해 주는 상상력의 바다에서 같이 헤엄치고 있는 수준이지요. 진짜 놀라운 일은 마지막에 일어납니다. 찰리가 내밀어 준 손을 잡지 않고도 혼자서 상상할 수 있게 된 거지요. 그렇게 싫어하던 토마토를 보고 롤라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토마토는 달에 있는 ‘달치익쏴아’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맛있게 냠냠 먹었어요. 정말 멋지지요?

아이에게 상상의 문을 열어 주세요
안 먹는 음식들의 목록을 끝없이 줄줄 외우던 롤라가 오빠의 이야기에 넘어가 음식을 먹게 되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물론 ‘편식하는 아이와 조금 더 먹이고 싶은 부모님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 사람들에게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느껴지는 ‘음식’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단숨에 뛰어드는 점, 그것도 이 그림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에요.

생활 속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과 사물, 건물들에 자기만의 이름을 한번 붙여봐 주세요. 엄마가 이 책의 찰리처럼 먼저 시작한다면, 아이들은 금방 엄마보다 더 빨리 상상력의 문을 활짝 열게 될 것입니다. (이윤주/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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