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반품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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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현대 홈쇼핑 7층의 콜센터. 상담원 정소희(27)씨는 전화 고객에게 "지난번에 저희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보네요. 이번 상품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시고 구매 결정을 해 주세요"라고 부탁하고 있다.

물건을 더 팔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말리는 것이다. 정씨가 이처럼 고객에게 구매 자제를 부탁한 것은 이 고객의 인적 사항을 컴퓨터에 입력하자 화면에 '상담이 필요한 고객입니다'라는 메시지가 튀어 나왔기 때문.

이 업체는 반품을 줄이기 위해 최근 3개월간 주문 건수의 60% 이상 취소.반품한 고객을 특별 분류하고, 주문 내용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정씨는 고객에게 "궁금한 게 있으시면 더 물어보라며 시간을 끌었지만 고객의 구매 의지가 강해 주문 입력을 했다"며 "고객 만족도를 낮추지 않으면서 반품을 막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TV 홈쇼핑.인터넷 쇼핑 업체들이 반품을 줄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상품을 직접 보지 않고, 만져 보지 않고 구입하기 때문에 반품이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지만, 가능하면 그 비율을 낮추려고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한편 소비자들은 홈쇼핑 방송에서 과장 광고나 경품 남발.현혹을 미리 차단하고 제품의 질 향상과 크기.색상을 다양화 하는 노력 등을 우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품을 막아라=15일 오후 서울 구로동의 한 쇼핑업체 물류센터. 배달을 마치고 들어온 1t 트럭들은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포장이 뜯긴 각종 의류와 전자제품 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애프터 서비스를 요구하는 제품도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 환불을 요구하는 반품들이었다.

영업소 관계자는 "트럭 1대당 1백개의 물품이 나가면 10개 이상 반품을 갖고 들어온다"며 "TV 홈쇼핑이 정착돼 가는데도 반품 비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TV 홈쇼핑 업체의 평균 반품률은 15~20% 수준이며, 인터넷 쇼핑몰의 경우엔 5~8% 정도다.

LG홈쇼핑 관계자는 "1995년 홈쇼핑 사업이 시작된 직후에는 반품률이 25%를 넘었으나 지속적으로 떨어져 10%대에 머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품이 많은 이유는 우선 TV 홈쇼핑의 경우 반품기간이 30일인 데다 상품을 받고 아무런 하자가 없어도 마음이 바뀌면 수신자 부담의 전화 한통으로 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품을 직접 보거나 착용하지 못하고 구입하는 홈쇼핑의 특성상 물건을 받아보면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재질이나 느낌이 다를 수 있고, 충동구매의 경우 '변심'도 큰 반품 이유가 되고 있다.

여기에다 경품 당첨만을 목적으로 상품을 주문해 당첨되면 상품을 주문하고 당첨이 안되면 취소하는 '경품족'이나, 의류.보석 등을 일단 착용해 보고 돌려보내는 '얌체 쇼핑족'도 일부 있다는 것이다.

홈쇼핑 업체들은 이러한 반품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 업체는 평소 반품률이 70%를 넘는 고객이 최근 디자이너 브랜드의 고가 정장을 주문하자 자사 직원과 의류업체 직원을 딸려 보내 직접 입혀 주고 구매의사를 확인한 뒤 돌아오기도 했다.

업체 관계자는 "직원을 보낸다는 것은 홈쇼핑의 속성을 포기한거나 마찬가지지만 반품 예방과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체들은 또 얌체 쇼핑을 막기 위해 고가 의류.보석.골프용품 등에는 홀로그램 스티커를 붙여 이를 제거할 경우 반품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

일부 사용하고 난 뒤 돌려보내는 사례가 있었던 화장품.식품류는 샘플을 동봉해 본품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경품을 타기 위해 여러건의 주문을 했다가 취소한 경우에는 당첨돼도 경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또 보석 판매 방송 때 실제보다 더 빛나게 보이도록 사용했던 카메라 필터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거나 의류 등의 사이즈를 다양하게 하고 제품 품질검사를 까다롭게 하는 등 구조적인 대책도 시행하고 있다.

◇중소제조업체가 골탕=반품 요청이 오면 홈쇼핑 업체들은 제품을 다시 찾아오는 배송 비용까지 물게 된다. 홈쇼핑 업체 관계자는 "왕복 배송비.창고 보관비.직원 관리비 등을 포함해 반품 한건당 1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부담은 홈쇼핑 업체에 제품을 팔아달라고 맡긴 중소 제조업체들에 돌아간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반품 제품을 홈쇼핑 업체 물류창고에서 다시 회사로 싣고 가야 하는 데다 상당 부분의 제품들이 '중고품'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은품을 제공하는 시간대에 팔린 제품의 반품률이 높은데 이 사은품도 제조업체가 제공하고 있어 이중의 부담을 지는 것이다.

한 제조업체 사장은 "반품기간을 한달로 잡은 것은 업체 쪽에서 보면 엄청난 재고 부담이고 이는 곧바로 원가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며 "홈쇼핑 채널을 타면 큰돈을 버는 것 같지만 잘못하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고 말했다.

한편 소비자 송유경(35.경기도 안양시 평촌동)씨는 "TV 홈쇼핑에 반품이 많은 것은 여전히 사은품이나 경품을 남발하고 방송 중에 '마감 임박' 등 멘트로 소비자 심리를 착취해 충동구매를 부채질하기 때문"이라며 " 업체들의 '팔고 보자'는 의식과 함께 소비자들의 '사고 보자'는 의식이 함께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영렬.조민근 기자, 사진=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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