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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호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파고다공원하면 옛날엔 서울명소로서 서울을 찾는 사람이면 꼭 한번 찾아보도록 돼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 그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노인·실업자·가출소년 등등 일종의 소외된 인간군상들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만해도 4·19나던해 「데모」군중속에 끼여서 공원속에 세워졌던 전독재자 이승만대통령의 동상목에 밧줄이 감겨 넘어지는 광경을 보고선 한번도 그곳울 찾은 일이 없다.
그런데 올4월19일은 어쩐지 6년전의 그날 흥분의 도가니 였던 시민들의 발자취가 어쩐지아쉽도록 추억되기에 서울의 거리를 혼자서 서성대다가 파고다공원에 들러봤다.
그러나 온서울에서 4·19가 말살되어 버렸듯이 그곳 역시 4·19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엔 딴 날이나 다름없이 소외된 군중들이 여기 저기 모여 앉아 실의의 태공망 같은 세월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거개가 시국평·정흡평이었다. 그리고 자못 우국지사같은 말투들이었다.
그런데 나의 귀에 그들의 이야기의 내용보다도 용어가 묘하게 들렸다.
그들의 입 끝에 오르내리는 전대통령 윤보선씨와 현대통령 박정희씨의 호칭이 약속이나 한 듯이 대통령이라는 직위도, 씨니, 박사니, 장군이니하는 경칭도 쑥빼고 동네애들 이름부르듯이「아무개」「아무개」하고 이름석자만 마구 부르는 것이었다.
한나라의 대표자·지도자·지배자의 이름도 시민들과 동등하게 부르는 것이 민주주의의 자랑인지도 모르지만, 근러나 어쩐지 어색하기만 했다. 의정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들을 아끼고 존중하는 감정이 시민쪽에 있다면 결코 그렇게 막 부르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 시민의 무교양만을 탓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만약에 있다면 위정자에서부터 시민에 이르기까지 뭔가 반성해 볼 일이 아닌가 싶다.<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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