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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걱정 마, 다 지나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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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규연
논설위원

2009년 4월의 어느 날 밤, 강원도의 한 펜션에서 집단자살이 있었다.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난 남녀 4명이 모여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모집창구가 사이버공간이었다는 특이점 때문에 몇몇 언론의 연말 10대 뉴스에 들어갈 정도로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었다. 그날 세상을 등진 네 명 중에 청년 Q씨도 있었다. 당시 한 신문은 경찰의 말을 인용해 Q씨의 자살원인을 ‘채무관계 고민’으로 규정했다.

 나중에 한국자살예방협회는 Q씨를 포함해 몇몇 자살자를 대상으로 국내 첫 ‘심리적 부검’을 했다. 자살자의 주변사람을 인터뷰하고 유서 등 활용 가능한 자료를 모아, 왜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과학적으로 밝히는 작업이었다. 그 기록을 토대로 Q씨의 마음 모양새를 간략하게 재구성해 봤다.

 ▶고민·병력: 채무불이행 상태였던 것은 맞음. 집안 경제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못해 부모를 원망함. 군 생활 때 선임병에게 자주 맞았고, 제대 후 직장에서 구타를 당해 힘들어했음. 우울증으로 병원 다닌 흔적도 있음. 친한 친구는 한 명임.

 ▶자살 직전 행적: 한 달간 우울해했음. 일주일간 집에서 술을 마심. 자주 우는 모습 목격됨. 어머니에게 탕수육을 배달시켰고 동생에게도 수십만원의 용돈을 줌.

 모든 사람의 삶이 문학소재인 것처럼 Q씨의 삶도 한 편의 소설이었다. 자살 원인은 ‘채무불이행’만이 아니었다. 여러 고민이 칡넝쿨처럼 얽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잘못된 선택을 결행하기 전, 통음하고 신음했다. 누군가 그 신호를 눈치챘더라면, 한마디 위로를 건넸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Q씨는 연간 자살자 1만5000여 명 중 한 명이다. 우리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1명(2011년)으로 세계 최악이다. 20년 전 7명에 불과했는데, 국민소득만큼이나 극적으로 죽음의 기울기가 상승했다. 해외에서 ‘코리안 시크릿 넘버원’으로 자살을 꼽을 정도로 거침없이 질주했다. 속도를 늦출 방안은 없을까. Q씨의 심리적 부검 내역에 코드가 숨어 있었다.

 해결의 첫발을 자살 원인을 보는 시각에서 찾아보려 한다. Q씨에게서 보듯, 자살의 원인은 보통 하나가 아니다. 성적부진·가난·실연 등이 발단은 되지만 그렇다고 바로 자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고민 과정에서 사회적 지지와 치유를 받지 못했을 때 마지막 탈출구로 자살을 택한다. ‘코리안 시크릿 넘버원’은 절망보다 더한 무망(無望)감이 한국인의 마음을 지배한 데서 비롯된다. 치열한 경쟁과 일등의식, 긴 근무시간에 짧은 휴식, 배려 적은 성장이 기이한 형태로 뭉치면서 문제해결의 비상구를 막아버린 결과다.

 그런데도 경찰·언론·사회는 ‘XX 때문에 숨져’라고 자살 원인을 단정한다. 이런 착각은 “자살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편견을 낳기 십상이다. 사회가 성적을 올려줄 수도, 돈을 풍족히 줄 수도, 애인을 구해줄 수도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위로와 배려, 적절한 치료로 그릇된 선택을 확 줄일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서울 중곡동 국립서울병원에서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인 하규섭 원장을 만났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살을 줄일 수 있다”고 보는 학자다. 그는 자살을 기도한 사람이 또 시도하는 만큼 고위험군인 자살경험자에게 정기적인 상담프로그램과 적절한 치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자살시도를 30% 줄였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위암 생존율은 정기검진 덕분에 높아졌고, 교통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은 돈을 부어 단기간에 씻어냈다. 이와 같이 공무원·국회의원·대통령이 강한 확신만 갖는다면 죽음의 폭주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다.

 자살시도자들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심경을 물으면 이런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모두 다 지나가는 거였는데….” 삶의 탈출구로 자살을 택한 자신의 충동을 후회하면서 생환에 안도하는 복잡다단한 생각이 말에 묻어 있다. 또 “당신이 자살 직전에 어떤 위로를 들었더라면 자살을 멈추었겠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걱정 마, 다 지나가는 거야.”

 우린 성장과 일등에 취해 속도와 빛에 빠져들었다. 이면에 격려와 지지, 휴식이 자라기 힘든 음지가 생겨났다. 국가와 기업, 사회의 난제를 풀려 매달리면서도 삶·생명의 고민에 대해선 매몰차게 한 방에 외면해 왔다. “스스로 죽는 걸, 어떻게 막아”라고. 그사이, 음지는 계속 커졌다. 위로·배려의 사회적 지지망, 기본적인 치유 인프라만 갖춰도 생명경시의 과속시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제 “걱정 마, 다 지나간다”는 긍정의 힘을 믿자.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