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강남 압구정역 커피熱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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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맞은편. 지하철 압구정역 5번 출구에 접하고 있는 가로 50m ×세로 50m 정도 크기의 블록에서는 세계적인 커피브랜드 간 각축전이 치열하다.

세계 최대 커피브랜드 스타벅스(Starbucks)가 지난 3월 한 귀퉁이를 차지한데 이어 6개월 후에는 미국 브랜드 커피빈앤티리프(Coffee Bean&Tea Leaf)가 다른 한 편에 문을 열고 도전한 것. 이곳에는 국내 브랜드 할리스(Holly’s)도 이미 1년여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되던 ‘압구정역 커피열전(熱戰)’은 올 10월 초 할리스가 철수함으로써 일단 1막(幕)을 내렸다. 스타벅스 창립 멤버들이 설립한 할리스는 외국 브랜드에 버금가는 대형 매장을 운영하며 고급화를 지향한 국내 브랜드.

98년 처음 사업을 시작한 이후 현재 4개의 직영 매장과 25개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다. 문을 닫은 압구정역점의 경우 이 지역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으나 대형 외국 브랜드들의 공세를 이기지 못해 물러나게 됐다.

결국 외국 브랜드 양대 산맥의 싸움이 된 이 지역 ‘커피열전’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대결이 최근 불기 시작한 테이크 아웃 커피브랜드 열풍의 축소판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

현재 국내 테이크 아웃 커피브랜드 시장은 99년 한국에 뿌리를 내린 스타벅스가 독주하고 있는 가운데 세가프레도, 커피빈, 시애틀베스트, 글로리아진스 등의 외국 브랜드와 로즈버드, 할리스 등의 국내 브랜드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스타벅스 등 외국 브랜드들이 대형 매장을 운영하며 고급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면, 국내 브랜드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실속파들을 공략하고 있다.

압구정역 주변은 고급 취향의 커피 매니어들이 많은 지역으로 고급 외국 커피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높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이 등을 맞대고 매장을 열어 적극적으로 대결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의 승부는 향후 다른 지역에서의 경쟁을 가늠하는 리트머스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양 업체는 더욱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스타벅스의 가장 큰 경쟁력은 강력한 브랜드 파워. 전세계 20개국에 총 4천7백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벅스는 특히 해외 유학파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20∼30대 중상류층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압구정역점의 경우 지하철 출구 바로 앞에 있어 입지적으로 유리할 뿐 아니라 엄격한 교육을 통해 직원들의 서비스 전문화에 신경을 쓴 점이 돋보인다.

스타벅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커피빈은 미국 브랜드로 올 5월 청담동에 첫 매장을 연 이래 강남을 중심으로 매장을 확대해 가고 있다.

지난 9월 문을 연 압구정 매장은 다른 매장과 마찬가지로 커피뿐 아니라 다양한 차(茶) 종류를 구비해 선택의 폭을 넓혔으며, 편안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비슷한 컨셉트으로 커피 매니어들을 공략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두 업체 모두 서로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커피빈과는 타깃 고객이 다르며 커피빈 매장이 들어선 이후에도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즉 두 업체 간의 경쟁이 ‘제 살 깎기’ 식이라기보다는 에스프레소 커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높여 오히려 시장을 키우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커피빈 측에서도 “당초 기대치가 더 크긴 했지만 (압구정 매장은) 잘되고 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백화점 건물 하나 들어서면 꽉 찰 만큼 좁은 지역이지만 이미 성업하고 있는 이들 두 업체에 또 다른 브랜드가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급 에스프레소 커피에 대한 이 지역 소비자들의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현재 박빙의 승부로 진행되고 있는 ‘압구정역 커피열전’이 또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글 김윤경 기자 cinnamon@econopia.com>
사진 김현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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