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아파트' 내부해킹에 허술

중앙일보

입력

"이웃들의 삶을 훔쳐보는 게 습관이 됐다. 나쁜 일이라는 건 알지만…."

'사이버 아파트'인 서울 동대문구 S아파트의 李모(33.회사원)씨는 요즘 퇴근 후 가끔 컴퓨터 앞에 앉아 괴상한 버릇을 즐긴다.

'관리자'를 뜻하는 접속명(ID) 'admin'으로 접속하면 같은 동(棟) 내 다른 집 컴퓨터 내용물들이 모두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그는 "어젯밤엔 한 이웃이 컴퓨터에 저장한 '출판계획서''이력.경력사항'등 회사기밀 서류로 보이는 내용도 들여다봤다"며 "다른 누군가도 내 것을 훔쳐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거리통신망(LAN)을 설치, 서버를 통해 동(棟)단위로 인터넷에 접속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사이버 아파트. 그곳에서 이웃집 컴퓨터 훔쳐보기가 은밀히 벌어지고 있다.

비밀번호없이 관리자 ID만으로 침투가 가능하고 최근에는 해킹 프로그램까지 유포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LAN으로 연결된 컴퓨터가 켜져 있기만 하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가계부나 비밀서류 등 뭐든지 볼 수 있다. 별도의 서비스회사 서버를 통해야 하는 e-메일은 예외다.

서울 강남의 D사이버아파트에 사는 姜모(16.중2)군은 "얼마 전 친구에게서 이웃집 컴퓨터에 접속하는 방법을 알았다"며 "어떤 집에는 '고스톱' 등 도박게임 프로그램만 잔뜩 설치돼 있더라"고 말했다.

◇ 늘어나는 사이버 아파트=사이버 아파트는 인터넷 생활화에 따라 1999년 생겨나 이미 전국에 11만7천가구가 입주했다. 개인이 별도로 인터넷 전용회선을 설치해야 하는 일반 아파트나 주택과 달리 월 2만~3만원의 사용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에 신축 아파트의 필수 시설이 되고 있다.

아파트 건설업체는 외부 통신망 관리업체에 인터넷 접속망의 설치와 관리를 대부분 위임한다.

문제는 LAN이 주로 외부인의 접근은 막고 내부인끼리는 자유롭게 정보 공유를 하는 기업.연구소 등에서 사용하는 통신망이어서 보안장치가 허술하다는 것.

이 때문에 내부 '해킹'을 근원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어 독립가구들로 구성되는 아파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인터넷 보안프로그램 전문가의 지적이다.

◇ 별도의 보안조치 필요=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정석화(34)경위는 "최근 인터넷 상에서 사이버아파트 등 LAN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시스템을 해킹하는 프로그램 10여종이 유포되고 있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프로그램은 1분 만에 설치가 가능하고 사용도 쉬워 사이버아파트는 거의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터넷 보안회사인 시큐아이닷컴의 남인우(南仁佑.33)과장은 "비밀번호와 개인 ID를 설정해야 타인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며 "중요한 개인비밀이 담겨 있을 경우 개인용 방화벽(Fire Wall)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아 설치하고 파일마다 암호를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민호.남궁욱 기자 ploves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