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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사채 색출의 득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나라 경제에 있어서 사채문제는 가장 큰 두통거리의 하나다. 이것도 금융의 흐름에는 틀림없지만 이자가 가혹하게 비싸다는 것과 전근대적인 조직을 통한다는 점으로 해서 그 정상화와 근대화는 심각한 문제다.
5·16 직후 군사정권이 제1착으로 손을 댄 경제정책인 농어촌고리채 정리도 그 시도의 하나이고 작년 9월이래 실시하고 있는 금리정상화 정책도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고 후자도 기대할 만한 성과를 아직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책상의 졸렬로 인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채를 둘러싼 경제적 현실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가를 말하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각 사업체가 쓰고 있는 사채의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할 도리는 없지만 실로 방대한 것이다. 그러나 사채이자에 대한 세금의 원천징수 책임이 차용업체에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율의 병종배당 이자세를 탈세하기 위하여 또한 사채 제공자를 은폐하기 위하여 사채이자를 다른 경비지출로 가장하여 기장 하는 경향이 많았다.
지난 번 법인세법이 개정되어서 병종 배당 이자소득(비영리대금 이자소득)에 대한 세율이 15%에서 10%로 인하됨에 따라서 소득이 높은 사업체에서는 사채이자를 양성화하는 것이 오히려 조세부담면으로 보아서 유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장부상 사업체의 사채의존도가 종전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고 국세청은 가장사채까지 등장한 것으로 보고 각 법인체의 장부에서 가장사채를 철저히 밝혀 낼 방침을 세웠다 한다.
국세청이 일선 관서에 내린 통첩은 법인체의 현년도 사채액이 직전 사업년도의 사채액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사채권자의 주소·성명을 주민등록 또는 기타 방법으로 확인할 것이며 사채권자가 확인되지 않거나 불분명한 것은 차입 당시의 자금수급면으로 보아 차입의 필요성 여부, 원금의 입금 경로, 차입금의 사용도 등등을 철저히 규명하여 가장사채를 색출할 것을 지시하였다 한다.
신설된 국세청으로서는 첫 번으로 가장 힘들고도 위험한 사업에 착수한 셈이다. 고소득업체에 있어서는 앞서 지적한 이유로 가장사채가 등장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이에 따른 세수입 감소의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도를 넘어 강행될 때에는 첫째로는 사금융이 두절됨으로써 경제순환에 일대 충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 가 하면 일부라도 양성화하기 시작한 사채가 또다시 음성화함으로써 근대화로의 기운을 역전시킬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전면적으로 보아서는 가장사채에 의한 탈세의 규모보다는 사채가 장부상으로나마 양성화하여 가고 있다는 경향이 경제전체의 정상화와 근대화에 기여하는 이득이 훨씬 크다는 점과, 병종배당 이자소득세율 인하의 목적도 여기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목전의 공적을 과시하기 위해서 돌발적인 조처를 취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으로 본다.
사채금융을 근대적인 금융의 흐름 속으로 흡수하려는 노력, 그 고금리가 자아내는 경제적 및 사회적 폐단의 제거는 긴요한 과제다. 그러나 그 과제가 중대하면 할수록, 긴요하면 할수록 조세징수권과 같은 일면적인 강제력만 가지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 강제력을 사금융 근대화를 위한 장기적이고도 종합적인 방안의 극히 작은 일부를 담당하는 힘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이 수립되고 성공적으로 실시되어서 농·어촌 고리채 정리나 금리현실화에 일부 노정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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