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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기러기 생활’ 청산 비용 분담 요구할지 촉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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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호 10면

평택시 주민 박세흥(62)씨가 11일 동북아의 미군 허브로 변신하고 있는 험프리 기지를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의 건물들은 미군 가족 숙소. 평택=조용철 기자

2013년 벽두인 1월 11일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허브로 만들기 위해 정비 중인 경기도 평택시의 캠프 험프리 기지와 그 주변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존 캠프가 확장되는 방향인 도두리 쪽으로 바닥은 정리됐고 지반을 2.6m 높이고 고르는 객토 작업이 활발하다. 흙을 싣고 자재를 부리는 대형 트럭들이 새로 깔린 도로 위를 씽씽 달린다. 토박이 주민 박세흥(62)씨는 “보통 겨울 공사는 하지 않는데 요즘은 새벽 6시부터 공사 소리가 소란스럽다”고 했다.

‘주한미군 복무 정상화’ 한·미 동맹 현안 되나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한 부동산 중개인(56)도 “지난해 기지 내 학교, 숙소 건물이 준공됐고 병원 기공식도 했다. 학교 13개와 대학 분교 2개가 더 들어선다더라”며 “노무현ㆍ이명박 정부 때는 공사가 더뎠지만 박 대통령이 취임하면 더 빨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 심리는 기지 인근 땅에 짙게 뿌려졌다. 요즘은 매기가 별로지만 4만~5만원대였던 논이 한창 때는 40만~50만원으로 치솟았다. 지금은 30만원 정도다. 이유는 험프리가 10만 명 규모로 커질 것이란 ‘소문’ 때문이다. 중개업소의 벽에 걸린 지도에도 ‘10만 명’이란 포스트 잇이 붙어 있다.

독신 근무 주한미군은 해외 차출 힘들어
주한미군 병력은 2008년 한·미 합의로 2만8500명으로 묶였음에도 기대가 커지는 것은 용산기지, 2사단 이전에 추가되는 ‘미군 인구’ 때문이다. 그 원인은 2008년 12월 10일 월터 샤프 주한미군 전 사령관이 발표한 주한미군 복무정상화(tour normalization)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주한미군 근무 체제는 36개월 가족 동반 혹은 24개월 독신 근무를 기본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주한미군 대부분이 1년 독신 근무에 따른 ‘기러기 문제’를 겪고 있고 미 군사력의 전략적 유연성도 제약받는다는 주한미군 수뇌부의 불만이 작용했다.

한 한국군 예비역 장교는 “이 문제는 오래된 현안”이라며 “1년 단기 근무로 인해 미군 장교들이 한국을 잘 모르고 군인과 그 가족들이 기러기로 사는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 현실이었고 어떤 공군 대령은 주한미군 발령을 받자 바로 사직서를 냈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군사적 측면의 문제는 ‘1년 독신 근무를 하면 다시 독신 근무지로 배치하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에 주한미군을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같은 전투지역으로 곧장 배치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 동반 근무 때 그런 장애물은 없다. 해외 차출된 주한미군이 작전을 마치고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복귀하면 전략적 유연성도 충족된다. 북한에 대해 ‘이렇게 많은 주한미군 가족을 공격할 테면 해보라’는 메시지도 줘 한국 방위공약도 강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용산 기지와 2사단 험프리 재배치 사업과 병행해 시작됐다. 미 국방부 계획에 따르면 미군 커뮤니티는 2011년 5만4010명(4600여 가족 포함), 2020년에는 7만6064명(미군 가족 1만2000명)이 된다. 캠프 험프리와 인근에 미국형 신도시가 조성되는 셈이다. 2020년 이후 군산 공군기지까지 포함되면 1만4250가족을 포함해 모두 8만4000명이 된다.
총 비용은 2020년까지 복무 정상화 비용 51억 달러를 포함, 176억 달러로 추산됐다. 한국은 40억 달러를 지원하는데 기지이전을 위한 비용 가운데 건설비로만 일부 사용될 수 있다. 2020년 이후엔 군산 공군기지 관련 비용 15억 달러가 추가된다.

그런데 사업은 곧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미 공군은 ‘군산 기지 비용엔 건설비만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집만 지으면 다냐는 것이다. 미 육군도 ‘2021~2050년 의료비와 인사 관련 비용만 157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했다. 계산이 잘못됐다는 게 속속 드러나자 2010년 10월 18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에 ‘재정 사정을 고려해 추진하고 일정에 구속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주한미군, 태평양 사령부, 국방부 관련 부서엔 ‘2011년 5월 31일까지 현실적이며 재정적으로 가능한 안을 보고하라’고 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나오지 않았고 외부 개입이 시작됐다.
미 회계감사국(GAO)은 2011년 5월 25일 ‘전략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대안도 고려 안 하고 시작했다’는 내용의 신랄한 보고서를 냈다. 계획의 목표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 주한미군 가족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꼭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요지는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했고 법적으로도 아무런 장애가 없을 뿐 아니라 가족에게 최선이 아닌데 왜 ‘복무 정상화’를 고집하느냐는 것이었다.

더 큰 핵심은 돈에 있다. ‘복무 정상화’에 2020년까지 51억 달러, 2020년 이후엔 220억 달러가 든다는데 이는 ‘경제성 분석이 없는 것’이라면서 제대로 분석도 하지 않고 캠프 험프리에 130억 달러 공사를 해 나중에 고치기도 어렵고 돈이 훨씬 더 들 것이며 2020년 뒤에 150억 달러가 더 드는데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GAO 보고서는 미 의회 분위기를 냉담하게 만들었다. 상원 군사위원회는 2011년 7월 ‘적절한 법이 제정될 때까지 복무 정상화와 관련된 일체의 지출을 금한다’고 못을 박았다. 칼 레빈 상원 군사위원장은 2012년 7월 “가족 동반에 필요한 월 주택비가 1만 달러다. 더 많은 가족이 갈 텐데 그럴 돈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2013년 예산에도 배정되지 않았다.

공식 입장은… 방위비 협상 대상 아니다
남은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 계획의 운명, 다른 하나는 한·미 안보에 미칠 영향이다. 계획의 운명에 대해 주한미군 관계자는 “잘 안 되고 있다.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 한·미 안보에 미칠 영향과 관련, 지금까지 단독 근무였기 때문에 이 형태를 유지해도, 계획이 없어져도 상관없다.

그러나 ‘복무 정상화’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주한미군의 사기, 한·미 방위 강화를 위한 근무조건 개선과 연계돼 방위비 분담 요구로 발전하면 달라진다. 미 의회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 GAO 보고서와 미 의회 보고서(CRS 리포트)는 이 점을 계속 짚는다. GAO 보고서의 경우 곳곳에 ‘미국과 주둔국(한국)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해 수십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주재국(한국)의 재정이나 관련 비용 지원이 아직 승인되지 않았다… 양국은 주한미군 재배치 사업에 어느 만큼 방위비 분담을 적용할지 협의 중’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딱 부러지게 말하진 않았지만 비용을 한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뉘앙스다.
한ㆍ미 간의 공식 입장은 ‘이 문제는 방위비 협상의 대상은 아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공보 담당자는 “복무 정상화는 미군 자체의 계획이며 방위비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도 “방위비 협상과 이 문제는 관련이 없다”며 “복무 정상화는 우리도 자세히 모르는 미국의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 방위비 분담금에는 포함돼 있지 않아 이 말은 맞다.

그럼에도 여지가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복무 정상화를 방위비로 지원하려면 주한미군 전력과 연관돼야 하고 양국의 분담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그런 협상은 없다”며 “협상 대상인지를 거론할 상황도 아니다”라고 했다. 관련 협상을 담당했던 국방부 전 당국자도 “방위비를 복무 정상화에 지원할 수는 없지만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의 세부 사업이 상호 연관돼 있어 방위비 분담금의 건설비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말한다. 지원은 어떻게 논리를 구성하느냐와 정치적 타협의 문제일 뿐이라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좌파 성향의 월간 군사잡지인 ‘디펜스 21’의 김종대 편집장은 “방위비 분담의 대상이 아니지만 미국이 열악한 주둔 여건을 이유로 병력 감축을 시사하면 한국 정부의 편법 지원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계한다. 그는 2009년 주한미군의 아파트 임대료 보증 문제를 전례로 꼽았다. 당시 미군 숙소 건설을 민간 업체가 수주하면서 투자금을 30년 임대료로 받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미군이 어느 때라도 철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업체가 30년 보장을 요구하자 국방부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며 편법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GAO 보고서도 임대료를 통한 한국의 주택 지원을 거론한다. 한국의 방위비 부담을 늘려→주택을 짓고→이를 주한미군 가족이 사용하는 방식을 시사한다.

CRS 리포트에 따르면 한·미 방위비 분담 합의는 2007~2013년까지로 돼 있고 한국은 7860억원을 지급한다. 2014~2018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상은 그래서 주목 대상이다. 미국은 이미 ‘50% 분담’ 요구를 하고 있다. 협상 의제에 ‘복무 정상화’가 포함되고 한국이 정치적 고려를 한다면 이 문제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방위비의 확대 같은 민감한 문제로 순식간에 번진다. 김 편집장은 “그럴 경우 반미 정서를 건드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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