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리막 세계 경제에 테러 강타… 출구 안보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구촌 경제여건이 4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때보다 안좋다. 당시는 선진국 경제는 문제가 없었으나 지금은 미국.일본.독일 등 세계 경제의 3대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반 침체'란 소리는 자주 들어온 것 같지만 따져보면 20년 만이라는 사실이 심각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 미국=3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0.4%를 기록했다는 발표는 예상되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 경제에 충격을 던지는 수치다.

1993년 1분기 이래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미국 경제가 지난해 말부터 후퇴 조짐을 보였지만 '그래도 미국인데, 곧 회복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던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줬다.비틀거리던 미국 경제가 9.11 테러로 결정타를 맞은 셈이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이 0.3%로 간신히 마이너스 성장을 면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3분기 이후에는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테러사태는 이같은 전망과 기대를 일시에 날려버렸다.

문제는 테러의 충격이 부분적으로 반영된 3분기보다 4분기 전망이 더 나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테러 여파로 항공 및 관광 산업이 붕괴되고 여기에 최근의 탄저균 테러공포가 경제활동을 더욱 위축시키면서 4분기엔 성장률이 마이너스 1%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은 경제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경우 '침체(recession)'라는 딱지를 붙인다. 지금까지는 경기둔화라며 경기침체 국면을 애써 외면해 왔지만, 4분기에는 본격 경기침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 전망이다.

이날 발표된 기업투자(-11.9%)도 큰 폭으로 감소해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GDP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소비활동의 위축도 두드러지고 있다. 비록 소비지출이 1.2% 늘었다고는 하나 이는 1993년 1분기(0.8%)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전날 민간 경제조사기구인 콘퍼런스 보드가 발표한 10월의 소비자신뢰지수도 7년반 만에 최저 수준인 85.5를 기록했다. 이는 전달(97)보다 급락한 것은 물론 증권가의 예상치(96)를 크게 밑도는 것이다.

2일 미 노동부가 발표할 10월 실업률도 97년 이후 최고 수준인 5%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10월 중 신규 실업자수가 30만명에 달할 것이며, 수개월 내 실업률이 6%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오는 6일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또 한번 금리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FRB는 올 들어 이미 아홉차례에 걸쳐 금리를 4%포인트(6.5%에서 2.5%)나 내렸다.

◇ 일본=일본 경제의 침체는 이미 일본의 국내문제 차원을 벗어났다. 세계은행은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 성장에 큰 부담을 주는 변수로 일본 경제를 꼽고 있다. 테러의 충격으로 미국 경제가 동요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침체가 깊어지는 바람에 세계 불황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도 경기회복을 위한 묘책을 찾지 못해 초조해 하고 있다. 워낙 실타래 얽히듯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부실채권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금융기능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의 부실채권이 32조엔에 달하며 금융권 전체로는 60조엔이 넘는다. 이에 발목을 잡혀 일본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도 효과가 없다. 정부의 금융감독권과 공적자금을 동원해 단칼에 정리하는 방안은 대량실업과 사회불안 때문에 엄두도 못내고 있다.

그동안 쌓여온 재정적자도 정부의 운신폭을 좁히고 있다. 나라빚이 무려 6백조엔에 달해 더 이상 재정을 동원한 부양책을 쓸 수 없다. 게다가 올해부터 일본의 65세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15세 이하 인구보다 많아져 앞으로는 노인복지에 재정이 더 쓰이게 된다. 이에 따라 일본인들은 장래의 증세(增稅)를 대비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고 있다.민간소비 주도의 자율적인 경기회복에 제동이 걸린 것은 이 때문이다.

연말 이후의 전망도 밝지 않다. 일본 정부의 공약인 '성역없는 구조개혁'이 본격화하면 실업자가 늘고 소비가 더 위축된다. 도산기업이 쏟아져 나오면 주가도 하락할 공산이 크다. 이것이 다시 금융권의 부실로 잡히게 되는 악순환이 마치 소용돌이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다.

경기가 위축되고 소득이 줄어드는 가운데 그나마 일본인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도와주는 것이 있다면 물가하락이다. 그러나 이것도 '좋은 물가하락'이냐 '본격적인 디플레'냐를 놓고 견해가 양분돼 있어 일본 정부가 확실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독일=내년 성장률이 유로랜드(유로화 가입 12개국) 최저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최근 경제전문지 한델스 블라트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독일의 6대 경제연구소의 경기동향 보고서를 인용, 2002년에 유로랜드 평균 경제성장률은 1.8%로 예상되고 있으나 유럽 최대의 독일 경제는 1.3%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 정부는 내년도 독일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민간연구소들보다도 낮은 1.25%로 전망하고 있다고 독일 경제주간지 비르트샤프트보헤 최신호가 보도했다.이 잡지는 독일 정부가 25일 발표할 예정인 2002년 경제전망에서 GDP 성장률을 당초 예상치보다 크게 낮추었다고 전했다.

앞서 한스 아이헬 독일 재무장관은 내년도 예상 경제 성장률을 종전의 2.25%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수출 의존도가 높은 독일 경제는 올해 들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으며 미 테러사태로 경기가 더욱 위축되고 있다.

베를린.뉴욕.도쿄=유재식.신중돈.남윤호 특파원, 서울=주정완 기자
jsyo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