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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취업문… 어느 대학생의 속타는 심정

중앙일보

입력

'최악의 취업난'이라는 표현 앞에 '6.25 동란 이후' 혹은 '광복 이후' 심지어 '단군 이래'라는 수식어가 심심치 않게 붙어다니는 요즘. 취업을 앞둔 20대 청춘들은 우울하다.

내년 2월 서울 중위권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할 예정인 94학번 김진호(경기도 일산.복학생)씨의 입을 통해 취업 준비생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원래대로라면 지난해에 졸업했어야 했는데, 취직이 어려워 학교를 1년 더 다녔어요. 원서 넣은 곳이요? 여름방학 끝나고부터 하루에도 몇곳씩 넣었으니 1백군데도 넘을걸요. 원래는 금융회사 쪽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이젠 제조업이건 건설이건 가리지 않아요. 그런데 황당한 건 지금까지 단 한곳도 면접 시험 보러 오라는 데가 없어요. 제가 원래 면접보러 오라고 하면 그 전날 머리 깎으려 했었거든요. 부모님에게 용돈 타기도 눈치가 보여서 이발 비용을 좀 아끼려고요. 근데 결국 두 달이 넘게 머리를 못 깎았어요. 결국엔 머리카락이 너무 자라 가리마가 타지더라고요."

"집안 식구들 보기도 사실 민망하죠. 부모님이나 여동생이나 취업 얘기 나오면 '힘내라''잘 될거다'위로해 주시지만 막상은 은근히 무안당할 때도 많아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취직 잘된 친구분 자식 얘기 하실 땐 정말 속상하죠. 여동생은 지난해에 취직했는데 가끔 저한테 용돈을 주거든요. 어쩌다 장난친다고 '옜다, 받아랏!'하면서 1만원짜리를 줄 땐 정말 얄밉죠. 가장 피하고 싶은 건 역시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예요. 동정어린 눈으로 볼 때가 가장 힘들어요."

"다들 어려우니 학교 분위기도 말이 아니에요. 4학년들이 수업 제대로 안듣는 건 예전과 다름없어요. 요새는 회사쪽에서 서류 전형이나 면접 마치고나면 합격한 사람들한테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요. 그래서 애들이 수업 시간에도 휴대폰을 끄지 못해요. 연락이 올 날이다 싶으면 계속 휴대폰만 들여다 보는 거죠. 같은 과 학생들끼리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도 많아요. 한명이 전화 받고 기뻐하면 같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던 다른 학생이 그 모습 보면서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가버려요."

"명문대생들도 사정이 마찬가진가 봐요. 들은 얘긴데, 잘 나간다는 모대학 경영학과 학생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농담처럼 '원양어선 타자'는 얘기가 나왔대요. 원양어선을 10년 넘게 타면 선장이 되는데, 선장 연봉이 수억원이라면서…. 명문대생도 취업 안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위안도 되고 그렇죠.'내가 못나서 나만 이러고 있는게 아니구나'하는 기분 있잖아요. 사실 여학생들은 상황이 더 심각해요. 소위 SKY대 출신이 아니면 중소기업에도 거의 취직을 포기한 상태예요."

"여자 친구요? 지난해에 헤어졌어요. 동갑이었는데 그쪽에선 나이도 있고 하니 결혼했으면 하는 눈치더라고요. 취직도 못한 제 입장에선 부담스러워 결국 그만 만나게 됐죠. 얼마 전엔 제가 텔레비전에 나간 적이 있어요. 취업 박람회장에 갔다가 방송국 기자랑 인터뷰를 했어요. 그게 나가고 난 뒤 연락 끊어진 옛날 친구들한테 전화 정말 많이 받았죠. 텔레비전에서 봤다는 말은 못하고 '요새 너 많이 힘드니?'하면서 위로해 주더라고요. 헤어진 여자 친구도 그걸 보고 전화했더군요. 세상 참 우습죠?"

김현경 기자 goodj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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