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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래는 10착|2시간24분44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제70회 「보스턴·마라톤」대회의 우승의 영예는 26「마일」3백85「야드」의 전「코스」를 2시간 17분11초로 달린 일본선수 「기미하라·겐지」에게 돌아갔으며 김봉래 선수는 2시간24분44초로 10착로 「골인」했다.
그러나 대회 기록은 작년보다 부진했다. 일본 선수는 그밖에도 2·3·4착를 모두 독차지했으며 미국선수「히긴즈」가 5위를 차지했다.
한편 유명종 선수는 2시간27분52초로 14위로 「골인」했다. 「홉킨턴」고등학교 앞에서 정각 12시 출발 신호가 울리자 5백여명의 선수들 중에서 「마틴즈·안베」김봉래 「에라사와」「필란드」의「샅라카」유명종 선수들이 앞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날 화창한 날씨에 동풍을 마주 안고 달리기 시작한 선수들 가운데 숫적으로 우세한 일본 선수들은 출발점에서 10·5 「마일」지점인 「나틱」에까지 오는 동안「기미하라」선수는 유 선수를「사사끼」선수는 김 선수를 견제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나틱」을 지나면서 「살라카」선수가 쳐지기 시작했으며 각 선수가 지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 선수는 쉽사리 자기 「페이스」를 유지했다. 13.5 「마일」지점인 「웰레슬리」를 지날 때 숨찬 눈치를 보이기 시작한·김 선수에게 김총환, 이만범, 김대중, 최영근, 박영녹제씨와 홍순철 주미 공사 그리고 교포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응원했다.
한편 김상만 동아일보 부사장은 대회 주최측의 같은 차로 「풀코스」를 달리면서 응원했다.
그러나 「웬레슬리」를 지나면서 김 선수는 선두진으로부터 약2백 「미터」가량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17·5 「마일」지점 「오본 데일」을 지나면서 피로한 기색을 완연히 드러내면서 일곱째를 달리게 되었다.
유명한 「실망의 언덕」을 맞이해서 기대했던 김 선수와「피치」는 오르지 않았으며 24·3 「마일」지점이 「홈리직」「코너」에 와서는 김 선수마저 보도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서윤복(육련 이사·훈련단 마라톤 감독·1947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씨의 말=김봉래 선수가 국내 기록을 유지 못하고 24분대로 10위에 머무른 것은 실력이 없고 작전의 「미스」가 아니라 장거리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까닭이라 추측된다.
김 선수는 대회가 19일인데 14일에야 겨우 떠났다. 또한 떠나기 1개월 전부터는 출국 수속을 하느라고 제대로 연습도 하지 못했다.
이같이 연습량이 부족한데다 여독이 풀리지 않았으니 자기의 기록을 유지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이는 김 선수가 전반을 자기 「페이스」대로 뛰지 못하고 후반에서도 피로를 회복하지 못한 채 뒤로 쳐진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①군원건이(일) 2시간17분11초 ②좌좌목정 일랑(일) 2시간17분24초 ③사택 철(일) 2시간17분46초 ④강부굉화(일) 2시간18분11초⑧「노먼·E·히긴즈」(미)2시간18분26초 ⑥「데이브·엘리스」(캐나다) 2시간19분47초 ⑦「톰·래리스」(미) 2시간21분44초 ⑧「보브·셔르프」(미)2시22분15초 ⑨「론·도즈」(미)2시간24분27초 ⑩김봉래(한) 2시24분44초 ⑭유명종(한) 2시27분5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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