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 존 구스데이브슨 한국코카콜라 홍보상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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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한국에서 산 지 벌써 20년 이상이 흘렀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보낸 셈이다.

이곳에 살면서 놀라운 점을 하나 꼽으라면 무엇보다 빨리 변한다는 점일 것이다. 항상 변화를 생각하는 한국사람들의 욕구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연유에서인지 다른 나라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 한국에서는 이곳저곳 움직이며 일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동 파출소를 비롯해 헌혈차.이동 책방 등이 바로 그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는 신선한 문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나도 이런 한국인의 특성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나도 한국인처럼 매일매일 뭔가를 배우려는 습관이 생겼다. 비록 난 한국사람들처럼 학원을 등록하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이곳에 살면서 나만의 '이동 학원'을 만들었다. 바로 한국의 택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난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한국어를 연습하기 위해 택시 안에서 운전기사들과 대화를 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여러 택시기사들이 운전을 하면서 나의 서투른 한국어를 듣고 기꺼이 대화 상대가 돼준 인내와 친절함에 감사할 뿐이다.

택시 운전사들과 대화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어 실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내가 사람들을 만나 한국어를 하기 전에 창피함과 당황스러운 것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정말 기막힌 일이 생겼다.

며칠 전 내가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 운전사가 내게 "한국말 이제 잘하시네요. 많이 느셨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서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10년 전 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던 나를 알아본 것은 물론 당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까지 상세히 기억을 하는 것이었다.

한국사람들도 같은 느낌이겠지만 이곳 택시 운전사들은 정말 박식하다. 그들은 정말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경제.사회.유명 연예인에 대한 소문까지 모르는 것이 없다. 내가 업무상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난 항상 택시 안에서 택시 운전사에게"그동안 한국에는 어떤 일이 있었어요"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그들은 기다린 듯이 최신 뉴스는 물론 날씨나 스포츠. 정치계 소식, 그리고 신문과 TV에 나오지 않는 여러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게다가 때로 그들이 덧붙이는 의견과 생각을 듣는 것이 너무 재미 있다. 난 택시 운전사를 통한 전파력이 신문 방송 못지않게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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