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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나의 비전 ③ 『한국 한문기초학사』 낸 심경호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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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30년 넘게 한쪽 눈으로만 책을 보면서도 방대한 저술활동을 해온 심경호 고려대 교수. 그는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까지 보자는 생각으로 산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심경호(57)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한쪽 눈으로 책을 본다. 서울대가 동숭동에서 관악산으로 이전하던 1975년 무렵 이야기다.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생이던 그는 답십리 집에서 관악산 캠퍼스까지 약 2시간 가량 통학을 하며 버스에서 책 보는 게 습관이었다. 괜찮았던 두 눈 중 오른쪽 시력이 점점 떨어져서 병원에 가보니 망막이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손상됐다고 한다.

 그때부터 30년이 넘도록 왼쪽 눈만으로 책을 읽어온 그가 새해 벽두 『한국 한문기초학사』(태학사)라는 묵직한 책 세 권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각기 736쪽, 968쪽, 76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고조선에서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한문학에 관한 거의 모든 기초 정보를 모아놓았다.

 또 한가지 그는 2년 전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11시간의 대수술 후 오른쪽 청력이 좀 떨어졌다는 그는 “다행히 뇌 기능은 정상이라 언어나 정신활동에는 지장이 없다. 한계라 생각하지 않고, 학문세계의 독안룡(獨眼龍:애꾸눈의 용. 당나라 때 맹장 이극용의 별명)이 되자,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까지 보자는 생각으로 산다”며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적인 동양학의 방법론을 새롭게 세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문기초학, 제목이 낯설다.

 “전통 인문학에서의 ‘소학(小學)’ 개념을 ‘기초한문학’이란 현대어로 재정립해 그 역사를 개괄한 것이다.”

 -소학은 ‘대학 ’의 상대어 아닌가.

 “‘소학’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아동의 윤리교육을 의미한다. 흔히 마당에 물 뿌리고 먼지를 쓸어내고 어른 말씀에 응대하는 것을 가르치는 책이 『소학』이었다. 그것 말고도 언어학·문헌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의 기초로서의 소학이 또 있었다. 서양의 필로로지(philology·문헌학)에 해당한다. 퇴계(退溪) 이황 선생도 소학의 방법론을 체득했기 때문에 고도의 철학적 사유를 구축할 수 있었다. 정조 시대에 학문이 발전한 것도, 정조 자신이 소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 때문이란 사실을 놓쳐선 안된다.”

 -요즘 동양고전이 인기다. 우리 존재의 근본에 대한 갈증일 것이다. 한문을 익히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권한다면.

 “좋은 문장을 모아놓은 『고문진보』 『명심보감』 같은 책부터 시작해 『논어』 『맹자』 『사략(史略)』 등으로 점점 나아가면 된다. 이런 책들을 소리 내어 많이 읽고 의미를 새기다 보면 어느 정도 한문의 문리(文理)가 트인다. 『천자문』부터 배우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게 쉬운 책이 아니다. 그래서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은 한자교육용으로 『아학편(兒學篇)』을 펴내기도 했다.”

 -문리란 무엇인가.

 “글의 이치란 뜻이다. 단지 문법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한문 고유의 수사법과 문장의 의미까지를 모두 포괄한다.”

 -한문기초학에서 다루는 것은.

 “우선 문자학·음운학·훈고학의 세 부문이 있다. 문자학은 한자의 모양을, 음운학은 소리를, 훈고학은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여기에 한자를 익히는데 이용되는 한자교본에 관한 학문, 저술의 계보를 탐구하여 목록화하는 학문 등이 포함된다. 전통 한문학은 사실 종합인문학이었다. 한국의 한문기초학은 중국의 것을 참고하면서도 우리 나름의 체계를 발전시켜왔다.”

 -새해의 포부가 있다면.

 “오래 전부터 『한국 한문학사』를 준비해오고 있다. 한국 한문학의 역사적 특성을 현재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싶다. 『한국 논리수사학사』도 별도로 준비 중이다. 한문의 수사학이 논리학과 연관을 맺으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으며, 한문학이 지닌 사유의 원리를 어느 정도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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