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화, 가수인생 40년 '잘했군 잘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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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에 데뷔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이 1백20장. 노래는 2천여곡. 공연은 7천여회에 달한다. 가수 하춘화(46) 씨다.

하씨가 지난 20일 정부에서 문화훈장 옥관장을 받았다. 40년 동안의 가수 생활을 통해 국민에게 기쁨을 준 점, 각종 사회 봉사 활동에 적극 참가해온 점 등을 평가받았다.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동숭동 문예회관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올해 여든이신 부모님을 모시고 갔어요. 아버님이 '더 분발하라'고 하시더군요."

지난 24일 오후 신라호텔 뒤뜰에서 만난 하씨는 나이에 비해 훨씬 젊고 활기차 보였다.

"딸만 넷인 집안의 둘째딸입니다. 네 자매 가운데 둘은 교수고 한명은 컴퓨터 디자이너로, 노래와는 거리가 멀어요. 더구나 부모님은 두분 다 음치시니 저는 돌연변이라고 할까요."

하씨는 특히 부친 하종오옹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때 부산에서 손꼽히는 사업가이자 공직자로 유명했던 부친이 다른 모든 일을 접다시피 하며 딸을 가수로 성공시키겠다고 나선 것은 그의 나이 마흔살 되던 해였다고 한다.

"제가 세살 때 벌써 3백곡이 넘는 노래를 외워 불렀다고 합니다. 정말 특이한 아이가 났다고 세상에 소문이 나고…. 다섯살 때 아버님이 제 손을 잡고 상경, 지금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동아예술학교에 입학시키셨어요."

'맹꽁이 타령'의 작곡가 형석기씨가 너무 이르다며 반대하던 부친을 설득,이듬해 '효녀 심청 되오리다'가 들어 있는 데뷔 앨범을 냈다. 열한살 때 영화 '아빠 돌아와요'에 출연하고 주제곡을 불렀는데, 이 해에 1980년대까지 한국을 대표한 레코드사인 지구레코드사에 전속됐다.

그녀가 초대형 히트곡 '물새 한마리'를 발표한 것은 서울 정화여중 3학년 때인 71년. 열여섯살이었다. 이듬해 '잘했군 잘했군'으로 연이어 홈런을 날리며 그녀는 일찌감치 전성기를 열었다.

"열아홉살 때부터 본격적인 전국 공연을 시작해 약 10년간 계속했어요.무수히 많은 공연을 했지만 지금도 무대에 오르기 전엔 긴장이 됩니다."

공연 중 사고가 일어나 당시 무명의 사회자였던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그녀를 들쳐업고 극장을 빠져 나왔다는 77년 11월 이리(현 익산시) 기차역 폭발 사건, 부친이 그녀를 껴앉고 극장 돌계단을 굴러 빠져나왔다는 73년 서울 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 전신) 화재 사건, 남북한 예술인들이 첫 공식 교류한 85년 남북예술단 교환 공연 등을 그녀는 담담히 회고했다.

"이리역 폭발 사건 당시 역에서 5백m 정도 떨어진 극장에서 숨진 관객들의 바지 주머니에서 제 사진이 나왔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엉엉 울었던 일을 잊을 수 없어요."

그녀는 79년 서른아홉살의 나이로 뒤늦게 대학에 입학해 지난해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 화제가 됐다.

"이제는 내가 대한민국의 가수로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숙제로 생각한다"는 그녀는 "젊은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는 대중음악 전문학교를 설립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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