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저항에 부딪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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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도 없고 손전등도 잃어버렸는데 어느새 날이 어둑해진다. 나아가기는커녕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 이 일을 어찌한다.

이 책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는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이렇게 비유하며 근본, 즉 자유주의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어둠'은 두 가지. 하나는 국가와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이며 또 하나는 우리 사회의 부실한 자유주의적 전통을 뜻한다.

저자들은 "금전적 이익만을 추구하여 수많은 사람의 생활을 유린하는 신자유주의가 오래 지속될수록 양심의 저항은 커질 것"이라며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에 거리를 두는 것으로 말문을 연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사회의 경우 신자유주의 비판과 자유주의의 전통 확립은 둘로 쪼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에 서 있다.

즉 자유주의의 역사적 형성과 철학적 근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곧 '21세기의 유일가치 신자유주의'를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형식적 차원에서 보자면 이 책은 자유주의에 대해 골몰해 온,정치.경제.철학.역사 등을 전공하는 10명의 소장학자들이 매달 월례 연구 모임을 통해 내놓은 책이다. 따라서 개별 논문간의 연계성이 조금 느슨해 보이기도 하며 글마다 자유주의에 대한 입장과 분석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글에서 나타나는 현 정부의 정책 비판이나 신자유주의와의 확실한 거리두기에서는 일종의 메니페스토(선언) 적 성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총론에 해당하는 이근식의 '자유주의와 한국사회'는 신분에 의한 차별을 철폐하고 사회관계 속에서의 실질적 자유를 성취한 자유주의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자유주의란 하늘에서 그냥 던져준 것이 아니라 당시 서구 시민계급의 피와 눈물을 바탕으로 성취된 것이며 이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효율적 자본주의의 주형틀을 통해 제도화됐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특히 자유주의가 "돈이 없는데 무슨 자유 □ "라는 경제적 평등의 문제에 직면해 스스로를 변형해 가는 과정을 살피며 요즘의 신자유주의를 상대화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신자유주의가 그간 누적되어 온 국가 실패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적 임무를 달성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문제(시장의 실패) 를 누적시켜 다시 개입주의에 자리를 물려주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원형(原型) 이랄 수 있는 시장 자유주의를 근본에서 비판한 폴라니를 소개하는 김균의 '칼 폴라니와 자유주의 비판'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적 자유주의 전통 속에서의 의미를 갖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논쟁을 다룬 글이나 한국 헌법에 내재한 자유주의적 가치를 되새기며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용인할 것인가" 등의 논쟁은 이미 논쟁의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글 등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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