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뮤지컬 ‘완득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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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뮤지컬 ?완득이?에서 도완득과 윤하를 연가하고 있는 한지상(왼쪽)과 이하나. [사진 에이콤]

지난해 연말 창작 뮤지컬 세 편을 연이어 봤다. 세종문화회관의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밥퍼), 대학로 동숭홀의 ‘심야식당’, 그리고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개관작인 ‘완득이’다.

몇 년 전보다 창작 뮤지컬의 때깔이 좋아진 건 확실했다. 세 편 모두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거의 없었고, 억지춘향 스토리도 아니었다. 탄탄한 구성, 적절한 음악 등 짜임새가 있었다. 하지만 딱히 감흥은 없었다. ‘밥퍼’는 위인전 보는 것 같아 밋밋했고, ‘심야식당’은 나열식 이야기인 탓에 산만했다.

 세 편 중에 ‘완득이’가 가장 나았다. 스토리·캐릭터·장면 구성 등에서 합격점을 줄 만 했다. 액션도 박진감 있었다.

그래도 ‘2% 부족한데…’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뮤지컬 ‘완득이’를 본 날, 집에 돌아오니 TV에서 영화 ‘완득이’가 방영 중이었다. 나는 영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악당 같던 선생 ‘동주’의 따뜻한 인간미엔 괜스레 미소가 터졌다.

 압권은 어머니와의 재회였다. 둘의 관계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구두방 주인에게 완득이는 한마디 툭 던진다. “제 어머니에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창작뮤지컬이 한국 영화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뮤지컬 ‘완득이’를 보며 부족하게 느낀 2%는 다름 아닌 ‘몰입’이었다.

 최근 대박 난 영화·드라마 중 뮤지컬 무대에서 성공한 게 있을까. 없는 거 같다. ‘번지점프를 하다’ ‘파리의 연인’ 등이 잇따라 올랐지만 그저 그랬다. 왜 뮤지컬은 영화만큼 재미 없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단지 ‘완득이’를 보며 얼핏 떠오른 생각은 ‘미묘한 감정선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였다.

 영화는 클로즈업 기법으로 배우의 표정 변화를 디테일 하게 잡아내는 데 반해 공연예술 뮤지컬은 그런 세밀함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걸 메워주는 게 결국 음악일 텐데, 한국 뮤지컬 음악이 아직 그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었다.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시장을 주도한 건 ‘위키드’ ‘엘리자벳’ 등 해외 뮤지컬이었다. 흥행 순위 10위안에 한국 창작뮤지컬은 단 한편도 없었다. 힘겹게 창작하는 이들에겐 이런 쏠림 현상이 씁쓸할 게다.

“뮤지컬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란 항변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창작뮤지컬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왜 그걸 몰라주느냐. 관객이 야속하다”란 소리는 그저 투정으로만 들린다.

유독 이 바닥만 라이선스 뮤지컬이 넘쳐나는 통에 창작뮤지컬 만드는 걸 무슨 유세인 양 떠들지만, 세상에 창작이 아닌 예술행위가 있던가. 표절이 아무리 난무한다고 “난 베끼지 않고 곡 만들었어”라고 자랑한다면 우습지 않겠는가 말이다.

 열악하다 해도 창작뮤지컬 제작환경은 나아지고 있다.

지난해 문화부는 ‘창작뮤지컬 지원 사업’에 30억원을 배정, 모두 열 작품에 2억∼4억원을 지원했다. 그건 올해도 계속될 예정이다.

지원금 1000만원에 벌벌 떠는 연극·무용계로선 입이 쩍 벌어질 규모다. CJ 등 대기업도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제작자도 “로열티 너무 비싸”라며 창작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고, 관객 역시 어색한 번역투의 수입 뮤지컬에 시큰둥해 하는 분위기다.

 그러면 이젠 창작자가 응답할 차례다. 세상 탓, 환경 탓은 이제 그만 하고 말이다. ‘명성황후’ ‘영웅’을 잇는, 아니 그걸 뛰어넘는 킬러 콘텐트가 탄생하는 2013년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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