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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한성백제의 비밀 고스란히 간직한 부여 시조 ‘동명’의 신전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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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풍납동 경당지구 역사공원의 2008년 발굴 현장 모습. [사진 송파구청]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는 한성백제가 송파구 일대 한강변에 자리 잡은 지 꼭 2030년이 되는 해였다. 마치 이것을 기념이라도 하듯 두 가지 의미있는 일이 있었다. 한성백제의 보고들이 숨어 있는 잠실역 사거리와 올림픽공원 일대가 지난해 3월15일 잠실관광특구로 지정됐고, 한성백제박물관이 4월30일 문을 연 것이다.

 한성백제는 백제(BC18~AD660) 678년 중 약 73%에 해당되는 초기 493년을 가리킨다. 흔히 사람들은 ‘백제’ 하면 웅진(충청남도 공주)과 사비(충청남도 부여)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초기도읍지로서 500년 역사가 이곳 한성에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성백제를 알지 못하고는 백제 전체 역사는 물론, 옛 도읍지인 2000년 서울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한성백제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 동안 문헌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는 유물과 유적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역사의 흔적들은 로마 폼페이처럼 땅 속 깊이 잠들어 있다.

 한성백제 중심에는 정궁·거민성으로서의 풍납토성과 별궁·방어성으로서의 몽촌토성이 자리하고 있다. 21대 개로왕 때인 475년, 풍납토성은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으로 안타깝게도 7일 밤낮으로 불에 탔다. 그 이후 웅진으로 도읍지가 옮겨졌으며, 풍납토성은 1500백 년 동안 퇴적물만 쌓인 채 사람이 살지 않는 불모지가 됐다. 풍납토성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건 1997년. 고층 아파트를 짓기 위한 터파기 작업을 통해 땅속 3~4m 밑에 잠자고 있던 백제의 숨결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1963년에는 풍납토성의 토성부분만 사적 제11호로 지정됐었다. 현재 23만평 중 약 10% 정도가 발굴되면서 한성백제의 실체를 조금씩이나마 풀어나가는 중이다. 이 발굴지 중 가장 눈 여겨 볼만한 곳이 2009년 사적 제11호로 추가 지정된 풍납동 136번지 ‘경당지구 역사공원’이다.

 예로부터 한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 최우선시 됐던 것은 바로 신전을 세우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일이었다. 1999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에서 내부가 깨끗이 정비되고 건물 전체를 빙 둘러가며 도랑을 판 뒤 숯을 깐 흔적을 보이는 여(呂)자 형의 초대형 지상건물 44호가 발견됐다. 부여의 시조인 ‘동명’을 시조신으로 모시던 신전의 터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부여계 고구려 유민에 의해 한성백제가 건국됐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귀중한 발굴성과다.

 이와 함께 다섯 단으로 쌓아 폐기시킨 200여 점의 토기들이 한꺼번엔 출토된 신전 앞 우물지(206호)나 말머리뼈 10개가 동시에 발견된 저장공(9호) 등을 통해서도 국가 차원에서의 제사의식이 거행됐음을 알 수 있다. 경당지구의 발굴이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의 왕성 터로 정하는 데에 결정적 근거가 된 셈이다.

 풍납토성 발굴이 시작된 지는 이제 16년이 된다. 풍납토성의 발굴과 정비는 상당부분 진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주문제를 둘러싼 재정적 확보와 함께 풍납동 주민들과의 원만한 조율이 이뤄지고, 송파구를 포함한 서울 시민의 애정과 관심이 더 모아지면 머지않은 미래에 한성백제가 재현한 모습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김경숙(52)씨는 2010년 송파문화원 박물관대학 수료 후, 송파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이며, 한성백제박물관 전시해설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현재 경당지구는 산책 코스와 간단한 운동기구가 설치되면서 풍납1·2동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공원으로 재조성 됐다. 신전 터 자리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1500여 년 전 한성백제의 풍광들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보게 된다. ‘검이불누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한 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경당 역사공원 의자에 앉아 한 번쯤 백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이 말의 뜻을 음미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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