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발행, 박재완 고집에 막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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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2월 31일 의원총회에 참석해 진영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5월 당 지도부 러닝메이트로 함께 당선됐지만 국채 발행을 놓고 미묘한 입장 차를 보였다. [뉴시스]

‘2조원 안팎→9000억원→7000억원→백지화’.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예산 6조원은 증액할 것”이라던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발언(지난해 12월 21일) 이후 국채 발행 규모가 바뀌다 결국엔 ‘없던 일’이 됐다. 이례적이다. 박 당선인도 지난해 12월 26일 중소 상공인 대표를 만난 후 “어느 정도 국채 추가 발행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애초 ‘부자증세’에 방점을 찍고 국채 발행에 부정적이던 민주통합당도 9000억원대의 국채 추가 발행에는 동의했던 터라 의문점을 더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적극적으로 국채 추가 발행을 주장했던 이 원내대표를 2일 만나 뒷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재정적자 축소’라는 당면 목표에 집착한 기획재정부가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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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과 박 당선인이 12월28일 만난 이후 기류가 바뀐 것인가.

 “보육료 지원이나 지방복지재정 분담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셨을 것 같다. 이 사안들은 정부가 반대하다 기조를 바꿨다.”

 -결과적으로 국채 추가 발행이 백지화됐다.

 “현 정부가 자신들의 업적에 누가 될까봐 국채 추가 발행을 안 하려고 발버둥치다시피 했다. 국채 추가 발행에 대해선 정부가 민주당보다 더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국채 추가 발행이 서민을 위한 정책에 필수조건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서민을 지원하는 정책은 국채 추가 발행과 링크돼 있다.”

 정부의 주무부처인 재정부의 설명도 다르지 않았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의 신년 간담회에서 “2013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국채 추가 발행만큼은 끝까지 막았다”며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재정 건전성을 유독 강조해 왔다.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재정이 한 번 흔들리면 나라 경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채 발행이 백지화된 데는 “빚 내서 박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지키려는 것이냐”는 야당의 반발을 의식한 측면도 크다.

 ‘국채 추가 발행=박근혜 공약예산 6조원을 위한 것’으로 도식화되는 것에 대해 박 당선인 측이 부담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당선인의 의중을 잘 아는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교통정리에 나선 것이란 얘기다. 진 부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공약예산 때문에 국채를 발행한다는 건 잘못 알려진 얘기다. 국채 추가 발행은 7000억원 이하 또는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이한구 원내대표의 발언과는 배치되는 얘기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의 예결위 한 관계자는 “적잖은 액수의 국채를 추가 발행하겠다는 데는 이 원내대표 개인의 생각이 일부 녹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채 추가 발행 등 예산안을 짤 때는 현재 정부의 입장과 야당의 입장 등이 모두 고려될 수밖에 없다”며 “이후 여야가 9000억원으로 합의했다가 정확히 계산해보니 5000억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됐고, 이 정도 규모라면 여유자금에서 맞출 수 있다고 판단돼 없던 일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원내대표와 진 부위원장 간의 갈등설’을 지적하기도 한다. 진 부위원장이 “(이 원내대표가) 박근혜 예산이라고 하는 바람에 야당과 언론에 공격의 빌미를 줬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그런 일로 불편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예산을 논의할 때 충분히 논의했다”고 일축했다.

 국채 추가 발행이 백지화되면서 여당 일각에선 추가경정예산 편성 필요성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는 새누리당과 정부 모두 부정적이다. 그러나 배경은 다르다. 새누리당은 “국채를 추가로 발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추경을 편성할 예산이 없다”(이 원내대표)는, 재정부는 “2013년도 예산안을 간신히 마무리 지었는데 곧바로 추경을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그러나 “추경을 하려면 (새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지) 지금은 아닌 것으로 본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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