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레밍, 우리랑 닮지 않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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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식경영 방법론에서는 각광받는 단어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한 ‘학습조직’에 대해 알아보자. 학습조직이란 “조직 내외적으로 정보를 발굴, 입수하여 조직의 전 구성원이 공유함은 물론 일상적 업무활동에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이를 조직 전체에 전파, 보급함으로써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한 대처능력과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켜…(이하 생략)”

아, 벌써 등을 돌리는 독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학습조직’이란 단어는 꽤나 어감이 딱딱하지만 조직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필요요건이다. 관습에 얽매인 조직 속에서 개인의 창의력은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지, 개인과 조직이 생산적으로 공존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다룬 것이 바로 ‘학습조직’개념이다.

그렇다면 그 핵심을 좀더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데이비드 허친스의 ‘Learning Fable Series’(『레밍 딜레마』, 『늑대 뛰어넘기』,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 3부작(김철인 외 옮김, 바다출판사)은 바로 그런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뭔가 깊은 얘기가 담긴 것 같긴 한데?
데이비드 허친스의 ‘Learning Fable Series’3부작은 무엇보다 쉬워서 좋다. 어려운 이론도 등장하지 않는 데다 재미있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만화까지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마치 한 편의 동화를 읽는 듯하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덮자마자 머리 속이 혼란스럽기 시작할 것이다. ‘재밌긴 한데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길까?’, ‘뭔가 깊은 얘기가 담긴 것 같은데?’이런 생각이 든다면 우선은 글쓴이의 생각을 반쯤은 따라잡았다.

데이비드 허친스는 조직학습과 조직변화 이론의 전문가로 코카콜라, IBM, 내셔널뱅크 등 세계적 기업과 일하면서 조직과 조직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인물. 그의 ‘Learning Fable Series’는 ‘모든 기업의 필독서’라는 평가 속에 전세계의 언어로 번역됐다. 데이비드 허친스는 학습을 ‘훈련’이라 말한다. 여기서 학습이란 지속적인 반복학습을 뜻하는게 아니다.

학습조직을 만든다는 것은 학습을 그 조직의 문화·프로세스·시스템으로, 즉 지속적인 학습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그의 이론은 3부작에 골고루 나뉘어져 있다. 『늑대 뛰어넘기』에서는 학습조직론의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며, 『레밍 딜레마』에서는 ‘개인적 숙련’을,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에서는 ‘사고 모델’을 검토한다.

『레밍 딜레마』는 한 편의 영화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레밍은 절벽 아래로 무조건 뛰어내리는 이상한 습성을 가졌다. 왜 뛰어내리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때, ‘에미’라는 레밍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뛰어내려야 하지?”레밍들의 절벽점프 축제가 벌어지는 날, 에미와 ‘점결연(점프를 결사반대하는 레밍연대)’는 레밍들의 집단자살을 막고자 한다. 비밀결사대가 등장하는 이 짤막한 우화를 통해 지은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그 답은 책 말미에 수록된 ‘레밍 딜레마 깊이 읽기’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늑대보다 빨리 배워야 해, 살아 남으려면…
『늑대 뛰어넘기』는 『레밍 딜레마』보다도 더 동화 같다. 양들과 늑대의 대결을 담은 이 우화는 양들이 힘을 합쳐 늑대의 위험으로부터 탈출한다는 짧은 이야기 속에 조직이 학습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변화해야 할 세 가지 행동영역을 담았다. “우리는 늑대보다 더 빨리 배워야 해.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는 양이 되어야 해”라는 양들의 외침은 학습이 개인과 조직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책의 편집이나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데이비드 허친스가 학습과정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미’다. 『늑대 뛰어넘기』의 해설에서 글쓴이는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지금쯤 여러분은 이렇게 묻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 내가 늑대와 양에 관한 이런 우화를 읽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지?’ 좋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우화의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미입니다. 그리고 이 책 속의 은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밝혀줄 것입니다.”

그리고 왜 학습해야 하는지 확신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를 가장 먼저 보는 게 나을 듯하다. 거기에는 이런 의미심장한 대목이 등장한다. 동굴 속에서 탈출한 원시인의 마지막 대사다.

“만약 아무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배우려고 하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거야.” (김중혁/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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