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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인류사에서 특별한 나라가 됐을까?

중앙일보

입력

최근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테러사태의 상관관계, 문명충돌론, 이슬람교의 원리 등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화되는 이 흐름 속에는 미국의 정체성을 묻는 견해도 있다.

오랫동안 미국사와 관련한 연구 활동을 계속해 온 전남대학교 사학과 김봉준 교수의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조합공동체 소나무)는 바로 이런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미국의 정체성을 밝히는 요소로 서부, 민주주의, 남부, 다문화주의를 든다.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미국의 정체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이 네 가지 요소에 바탕한 ‘특별함’이 미국의 세계 정책으로 연결됐다고 말한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편집자 주.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에서 말하는 ‘특별함’은 ‘보통보다 뛰어남’과 ‘예외적임’이란 뜻이 함께 포함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염두에 두신 ‘특별함’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책의 제5장 시작 부분에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미국인들이 갖는 ‘특별함’의 개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죠. 미국에서는 보통 ‘exceptionalism’이란 단어를 씁니다. 우리말 사전에는 ‘예외주의’로 번역하죠. 우리말의 ‘예외’라는 뜻은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exception’이란 단어는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훨씬 강합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평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자국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에 의한 것이죠. 책의 내용이 이런 미국인들의 ‘특별 의식’을 추적하는 것이기에 ‘예외적’이란 용어보다는 ‘특별함’이 더 적절한 용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지금 반미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슬람인들은 미국이 자신들의 ‘특별함’을 세계인들에게 보편으로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이 ‘특별함’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슬람인들이 미국에 갖는 반감의 상당 부분이 바로 미국의 ‘특별함’이죠. 그들의 입장에선 이 ‘특별함’이 미국의 오만함의 뿌리인 거죠. 사실 어느 나라고 자기 나라와 민족이, 혹은 종교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이후 유럽이 주도하던 자본주의가 20세기에 들면서,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로 바뀌자 이슬람권은 미국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거죠.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미국인들이 갖고 있던 ‘특별함’이 외교정책에서 적극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았습니다.

1846년 멕시코와 미국과의 전쟁이나 1898년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 등은 패권보다는 팽창주의 정책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특별함’은 좀더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미국의 세계 정책으로 연결됐던 것입니다.

이 책은 미국의 ‘특별함’을 이해하는 코드로 서부·민주주의·남부·다문화주의, 이렇게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이 네 가지 주제로 미국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4년 전 오랜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해방 이후 최대의 고비’라는 IMF체제의 경제 위기 상황을 맞게 됐죠. 다른 지식인들의 경우처럼 한국의 현실이 저를 무겁게 억누르고 있었죠. 제가 한국에서 미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미국의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의 흔들리는 정체성, 지역 감정, 세계화의 급물살 등을 보면서 미국과 미국의 역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죠. 자칫 제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해서 미국의 역사를 선택적으로 짜 맞춘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위의 네 가지 코드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미국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들입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겐 미국의 정체성을 역사 속에서 추적하는 책이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가깝고도 멀며,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미국에 대한 차분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역사학자로서의 일종의 책무를 느꼈던 것이죠.

이 분산적인 코드들과 미국인들의 강력한 국가관은 서로 상반되는 게 아닙니까?
언뜻 보면 그렇습니다. 특히 지역 정서와 다문화주의는 강력한 국가관과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 역사에서 충분한 예를 찾을 수 있죠.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다릅니다. 제1장에서 다룬 프론티어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미국은 분명 서로 다른 정치·종교·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정착했던 사람들이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듯 느슨한 관계는 미국이라는 강력한 국가관으로 변화됐고 그 사상적 뿌리가 바로 그들의 ‘특별함’이었죠. 저는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에서 바로 이러한 역사적 노정을 설명했던 것입니다.

미국이 역사상의 다른 연방국가(예컨대 소련)와 차별되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미국 전문가로서 제가 잘 모르는 다른 연방국가의 경우와 비교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연방국가는 대체로 인종·종교·언어가 다른 집단들의 결합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방국가가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지속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미국도 시작부분에는 이러한 연방의 단점이 많이 노출됐죠. 서로 다른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 갖가지 이해 관계와 편견으로 어려움을 겪었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3장에서 다룬 북부와 남부의 대결이죠. 그 결과는 근대사에서 가장 처절했던 내전, 즉 남북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연방은 인종·종교·언어가 다른 집단들의 결합체가 아니라 서부로 팽창하면서 획득한 영토의 구분에 따른 단순한 지역 구분에 근거를 둔 연방입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강한 연방제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미국과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는 이 네 가지 코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미국이, 그리고 미국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직접적이고도 명쾌한 해답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도, 그리고 그 어떤 역사도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미국은 미국이고 우린 우리입니다. 전통이 다르며 그 사회를 형성하고 움직이는 요소는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서부, 프런티어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미국의 광활한 지역적 프런티어의 축복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해 미국의 역사를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에서 밝혔듯이 미국의 경험과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다시 프런티어의 예를 든다면, 우리에게 지역적 의미의 프런티어는 없지만 세계화·정보화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광활한 신천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로 이런 ‘공중’ 프런티어를 확보해야 합니다. 물론 책에서는 이런 서술이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저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선생님은 그간 『미국의 역사』, 『미국 외교사』, 『현대 미국의 사회 운동』, 『정복의 유산』, 『미국을 바꾼 4인의 혁신주의 대통령들』 등의 저술 혹은 번역에 참여했으며 전남대학교에서 미국사를 가르쳐왔습니다. 직접 미국에서 미국사를 공부한 동양인으로서 선생님에게 미국사는 어떤 의미입니까?
한 마디로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이란 멀고도 가까운 나라, 그렇지만 정확히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 역사도 마찬가지죠. 책으로만 대하는 미국사와 체험에서 얻는 미국사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미국의 중서부에서 석·박사를 거쳤는데 막상 캘리포니아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그 지역적 분위기에 상당한 차이가 있고, 책으로 공부할 때와 직접 학생들을 대하면서 느낀 미국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죠. 이제 미국의 위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미국을 정확히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미국은 항상 움직이는 동적인 나라임을 강조한 것이 이 책의 주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런 움직이는 타켓을 정확히 알려고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감정이나 이데올로기 등에 휩싸여서 미국을 바라볼 경우 결코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는 그런 노력의 자그마한 시작이라 할 수 있죠.

이 책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의 표제는 긍정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느낌이고 근간으로 소개된 『미국은 과연 제국주의 국가인가?』의 표제는 부정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나올 책에 대해서 설명해주십시오.
저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특별한 시각에 치우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책이 미국인들이 느끼는 특별함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이기에 긍정적인 색채가 더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은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특별함이 지금의 미국을 축조했던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기 때문이죠. 지금 작업 중에 있는 『미국은 과연 제국주의 국가인가?』(가제)는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죠. 미국인의 특별 의식이 지금의 미국을 만든 주요한 내적 동력이었는데 그 의식이 다른 나라와의 대외 관계에서 어떻게 적용됐는지를 추적하는 작업입니다. 표제는 분명 부정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그 서술에서도 미국 외교의 부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 역시 어떤 특별한 시각이나 이데올로기의 편향성에 의해서 좌우되기보다는 미국의 외교 전통을 미국 역사의 흐름에서 진솔하고 객관적으로 파헤치려고 합니다.

사실 속편 작업은 좀 쉬었다가 계속하려고 했는데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지금 우리 나라는 역사적 뿌리를 근거로 한 객관적인 미국 알기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열심히 작업하려고 합니다. 생각대로 작업이 잘 진척되길 바랄 뿐입니다. (김연수/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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