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실의 호기심 쑥쑥] 폭력에 무감각해진 애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임진강 가까이 샛강에서 물고기를 잡은 적이 있다. 망으로 바닥을 훑는 순간 퉁가리가 잡혀 올라왔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주황빛 퉁가리는 정말 신기하고 예뻤다.

하지만 그 퉁가리가 낳아 놓은 알들이 함께 올라오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 알들을 지키고 있던 퉁가리 어미가 얼마나 놀랐을까 싶었다.

지금도 건축 자재와 함께 쌓여 있는 모래더미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퍼올릴 때 얼마나 많은 물고기 어미들이 혼비백산 알들을 두고 도망갔을까 싶어서다.

요즘 TV에는 전쟁의 포화 속에 집을 버리고 도망쳐온 아프가니스탄 난민 어린이들이 자주 보인다. 맨발에 배가 고파 나무뿌리를 씹고 있다. 마치 포클레인으로 물고기 집을 헤쳐놓은 듯 살 길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다. 이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눈에는 또 어떻게 비쳐질지….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 테러에 무너지는 것을 본 어린이들이 무서워하기는커녕 "게임같다"며 재미있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 문학계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런 아이들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글과, 어린이들에게 '평화교육'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다.

또 한켠에서는 평화를 위한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어린이들에게 전쟁에 관한 책들을 읽혀 전쟁이 무섭고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하자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전쟁을 다룬 『몽실언니』(창작과비평사)나 『점득이네』(창작과비평사), 그리고 외국책으로는 『나는 평화를 꿈꿔요』(비룡소)와 『한스와 아이들』(서광사) 등이 추천되고 있다. 또 『핵전쟁 뒤 최후의 아이들』(유진).『전쟁은 왜 일어날까?』(다섯수레).『평화는 어디서 오나요』(웅진닷컴) 등도 권할 만하다. 대개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의 책들이다.

유아들은 과학책의 경우에도 '생명'을 느끼고 알 수 있게 돕는 책부터 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보통 과학책을 정서발달과 무관하게 논리적 사고나 지식을 얻는 수단으로 간주하기 쉽다. 하지만 좋은 과학책은 올바로 알고 올바로 느끼게 도와준다.

사물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느낌 또한 풍부해진다. 또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연관을 알아야 뭇 생명의 아픔이나 멀리 아프간 어린이들의 고통 또한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취학 전후의 어린이들에게 생명을 이야기하는 과학책이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다. 『바닷속 뱀장어의 여행』(비룡소)이나 『개구리가 알을 낳았어』(다섯수레).『갯벌에 뭐가 사나 볼래요』(보리).『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돌베개어린이).『씨앗은 어디로 갔을까□』(어린이중앙) 등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기보다 생명이 주는 따뜻한 느낌과 생명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쟁에 대한 보도에 파묻혀 '생명'의 가치에 무감해지는 듯한 요즘, 어린이들과 책을 통해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해 보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